맞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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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

[맞짱]

살다 보면 누구나 고난의 시절을 겪게 되고, 그 고난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직접 그 고난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에는 그 고난이 언제나 끝날지 참으로 막막할 때가 있다. 군대는 3년이란 기간이 정해져 있고, 제일 힘든 시기도 1년 6개월 정도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등병 때는 언제 병장이 될지 아득한 법이다.

그런데 세월이란 참으로 오묘하고도 공평하여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그 지랄 같던 고참 상병은 1년도 안되어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하는 말년 병장이 되더니 낙엽 지듯 사라지고, 온 세상을 얼릴 것 같던 혹한의 겨울도 어느새 햇빛에 녹아 땅바닥에서 질척거리니, 고난의 세월은 굳은살이 되어 거 보란 듯 웃는다.

2월 중순을 넘으니 겨울은 더 늙어 새벽부터 일어나 어스름 속에 불을 밝히며 짐을 싸는데, 봄이 겨울의 노쇠함을 눈치 채고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맞짱을 뜨자고 덤빈다. 하늘에선 바람이 뜨거운 입김을 불고, 물속에선 개구리, 땅속에선 새싹들이 아우성치고, 나무는 뼈마디를 실룩거리며 겁을 주고, 매화는 분홍치마 펄럭이며 응원을 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약할 것 같던 여린 봄의 도발에, 온 동네를 활보하며 큰소리치던 겨울은 격세지감에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이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어쩌겠는가. 아무리 강한 것도 세월을 이길 수 없고, 얼음장 같던 고난도 세월 속에 부드럽게 녹아나니, 오히려 때늦은 꽃샘추위가 애처롭고 부질없는 심술이리라.
1 Comments
상곡 2022.03.05 19:47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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