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수필隨筆 / 박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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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수필隨筆 / 박얼서

박얼서 0 156
시詩와 수필隨筆    /  박얼서

평소에 가끔씩 만나 소소한 일상들을 서로 주고받는 절친한 선배가 있다. 어제는 문득 그 선배로부터 아래와 같은 난해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초보적 질문 앞에 나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詩) 쓰기와 수필(隨筆) 쓰기 중 어느 쪽이 더 쉬운지? 그리고 이 두 장르의 차이점은 뭔지?’

이런 초보적 질문과 맞닥뜨리면 먼저 말문부터 막힌다. 너무나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한 내 창작 과정을 통해 느끼고 깨달은 생각들, 그런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다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고뇌하지 않는 창작물은 없다는 게 내 견해다.

아마도 詩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누구든 말과 글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맨 처음 접했던 것들이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또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이런 동시(童詩)였을 테니까 말이다.

시(詩)가 초·중·고, 대학까지 이어진 교육과정은 물론 사회생활 속에서도 늘 우리와 함께하는 이유다. 시(詩)야말로 짧고도 예리한 의사소통의 품격이기에 시적(詩的) 표현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언어예술의 극치인 셈이다.

수필(隨筆)도 마찬가지다. 시(詩)라는 운문의 영역을 벗어나면 곧 산문이라는 좀 더 광활하고 자유로운 장르를 만나게 된다. 그런 산문 숲에서 건져 올린 생활 속 이야기들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예술성 있게 쓴 글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들 인류의 삶과 직결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 학문이라면, 문학은 늘 인간의 본성인 희로애락과 함께한다. 그래서 문학은 각종 예술 분야를 통틀어 그 맨 선봉임을 자처한다. 예술 무대를 이끄는 지휘봉인 셈이다.

문학이야말로 세상 모든 예술의 탯줄이 아니던가! 문학은 오늘날까지도 인류 문명을 힘차게 견인해 오고 있는 수레바퀴로서 그 중심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문학의 중요성이며 그 책임성이다.

여기서 청나라 때의 문인 오교(吳喬)의 비유를 잠시 빌린다. 그는 문학의 재료를 쌀이라고 가정했을 때 “산문(散文)이 밥이면, 시(詩)는 술이다.”라는 설명이다. 러시아 작가 쉬클로프스키는 “산문이 낯익음의 언어라면, 시는 낯섦의 언어다.”라고 덧붙인다. 이에 나도 크게 공감하기에 위 선배의 질문에 대신하고자 한다.

짧고 간략한 비유로 이해를 도울 설명 몇 줄만 올려놓을 생각이었는데, 이것 또한 자꾸만 말이 길어지고 말았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하며 그만 끝맺을까 한다. “산문(散文)이 보행이면, 시(詩)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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