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켤레 마음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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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6 07:15
요즘은 물자가 풍족하다 보니 집안에 양말이 풍족하다. 장롱 양말통에 언제나 양말이 가득 차 있거나 빨래가 좀 늦어져도 몇 개씩은 있었으니. 그런데 내 발톱이 좀 날카롭고 탁구나 등산 같은 운동을 자주 하다 보니 한쪽이 구멍이 자주 생겨, 요즘은 양말을 살 때 같은 양말을 최소 다섯 켤레 열 켤레씩 사 놓고 신는데, 대학 다니던 아들이 코로나로 집에 와 있어 양말을 함께 신게 되었다.
그래도 양말통에 항상 양말 몇 개는 있었기에 불편함을 몰랐는데, 얼마 전 집사람이 강추위로 1층 배수관이 동파되어 당분간 세탁을 못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뭐 곧 가능해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 양말이 바닥이 났다. 나는 그제서야 우리 집 양말통이 도깨비 창고처럼 무한히 양말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집사람의 섬세함과 부지런함으로 우리가 풍족한 혜택을 누린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참으로 무심한 나는 마지막 남은 양말을 신고 출근하였음에도 양말은 까마득하게 잊고 집에 왔다가, 마침 문을 연 아파트 탁구장에서 간단히 탁구 한게임을 하고 왔는데, 거실 소파 보조 의자에 양말 네 켤레가 아주 귀엽게 널려 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양말이 없어서 손빨래를 했다는데 당분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당시 앞 베란다엔 어머니께서 간장을 달여 냄새가 심해 문을 열어두었는데 정말 바람 쌩쌩 부는 냇가에서 손빨래를 한 것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은 이렇게 시로 탄생되었고, 나는 그날 평소보다 5분 더 발 마사지를 하고, 다음날 세 시간 동안 목청을 가다듬고 녹음하여 영상을 만들고 가족 카톡방에 헌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