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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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6:49
몇 해 전 우리나라에 엄청난 가뭄으로 다들 속이 타들어 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가뭄이 심하여 논밭이 쩍쩍 갈라진 것은 물론이고 오래전 떨어진 낙엽들이 바싹 말라 불쏘시개가 되었고 살아있는 식물들마저 누렇게 말라비틀어졌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봄 가뭄과 가을 태풍이 재해 공식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올봄에도 비가 몇 번 안 내리는 것이 일찌감치 가뭄의 조짐이 보이더니 곳곳에 번진 산불까지 꺼지지 않아 벌써 재해 수준이다.
여기서 가뭄이 더 심해지면 적당히 내리는 비로는 잠시 해갈만 할 뿐 며칠도 안 되어 생명들은 다시 바짝 말라붙어 한낮의 태양 아래서 마른 신음을 내뱉게 되니 잠시 내리는 가랑비는 그야말로 옷깃만 스친 듯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마치 떠나간 님이 그리워 상사병에 헤매는 사람의 눈에 헛것이 보인 것인 양 잠시 하얀 커튼이 흔들리는 환영을 본 것인지 착각인지 가물가물하다. 상사병의 환상을 깨뜨리는 특효약은 찬물 바가지니 혼미한 세상에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 부어주기를 하늘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