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 어디에나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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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05:56
요즘 아파트 화단이나 산책길, 도로 곳곳에 꽃들이 활짝 폈다. 동백꽃은 나무에서도 땅바닥에서도 얼굴을 들고 한번 봐달라며 요염하게 웃음을 흘리고, 개나리꽃은 등교하는 병아리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줄지어 인사를 하고,
매화와 살구는 도도한 자존심에 한 귀퉁이서 은근한 향기만 풍기다 사라지고, 벚꽃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벌나게 피어 사람을 유혹하고, 들꽃은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와 저도 있다며 얼굴을 들이밀어 사람을 놀래킨다.
봄 되면 그리운 얼굴들이 모두 꽃으로 피어나는 법인데, 자연은 뒤늦게 나를 놀리는 것인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대책 없이 수많은 얼굴들을 피워낸다. 이제 나도 새로이 누릴 사랑보다 되새길 얼굴이나 추억이 더 아름다울 나이란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해도, 추억은 행복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 아무리 아름답게 피었더라도 곧 비가 오고 바람 불면 저 꽃들 다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빗물에 쓸려갈 터인데. 그 아름다운 얼굴들이 또다시 빗길에 쓰러져 우는 모습, 떠나며 우는 모습을 날더러 어찌 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