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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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낙화]

겨울이 끝나갈 때쯤이면 봄비가 온다. 봄비는 다소 질척거릴지라도 그리 차갑지는 않다. 봄비는 땅과 나무에 스며들어 움츠려 있던 생명들을 따스하게 녹여내니, 봄비가 몇 번 내리고 나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거기다 봄바람이 한 번 불면 꽃잎이 활짝 펴지면서 향기를 내뿜고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봄을 만끽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봄비에 꽃이 폈는데 또다시 봄비가 내리면 꽃이 진다는 것이다. 촉촉하고 포근하게 파고들어 꽃을 활짝 피우던 봄비가, 이번에는 사정없이 꽃잎을 땅바닥에 떨구고, 이어 불어온 봄바람은 남아있는 꽃잎마저 떨구어 담벼락이나 하수구, 또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모두 휩쓸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봄비는 그렇게 우리를 깨우고, 우리의 몸을 녹여주고, 우리에게 양분을 제공하여 꽃을 피웠음에도 기어이 꽃잎을 떨구게 만들었고, 봄바람은 그렇게 우리에게 따스한 바람을 넣어 꽃잎을 펴게 하고 향기를 세상으로 퍼트려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열매를 맺어주고 나무를 성장시키지만, 결국은 꽃잎을 휩쓸고 가버린다.

이 모든 과정이 삼백육십오일 중 불과 열흘 만에 일어나는 일이니 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그토록 아름답던 꽃 같은 시절은 그보다 더 짧은데 그때는 왜 몰랐던지 뒤늦게 후회하지만, 봄비가 없었다면 저 나무는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웠을 것이며, 봄바람이 없었다면 저 나무는 어떻게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었을 것인가!
꽃이 진다고, 이제 와서 봄비를 탓할 것인가! 봄바람을 탓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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