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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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05:43
벌써 꽃이 지고 있다. 올해는 예전보다 꽃이 빨리 피었다 더 빨리 지고 있다. 꽃구경은 사람 많은 축제에서, 꽃보다 더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사진도 찍고 추억을 남겨야 제대로 된 꽃구경인데, 놀 줄 모르는 나는 제대로 된 꽃구경 한 번 못했는데 벌서 꽃이 지고 있다.
봄꽃에는 개나리처럼 피었다 사라져 간 어릴 적 소꿉친구도 있고, 매화처럼 고고하게 나를 스쳐 간 사람도 있을 테고, 동백처럼 피눈물 뚝뚝 흘리며 떨어져 간 사람도 있을 테고, 벚꽃처럼 화사하게 나를 감싸 안았던 사랑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맨날 꽃만 보면 사람이 떠오른다면 미친놈이겠지만, 글을 쓰는 오늘 하루만큼은 내 모든 과거를 총동원해 환영을 만들어본다. 다양한 핑계로 실내에 갇힌 우울한 봄날일지라도, 가끔은 추억에 젖어 마음만은 봄날을 만끽해 보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고, 그것을 구가하는 청춘만큼 화려한 시절은 없고, 그것에 대한 추억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도 봄에 피는 꽃들이 모두 옛사람으로 둔갑한 듯한 환상에 빠진다.
매년 이맘때쯤 최고의 뉴스거리는 어디에 어떤 꽃이 폈다는 것인 것을 보면 바이러스가 아무리 극성이고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사람은 누구나 봄이 오고 꽃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얼마 안 가 열흘이면 꽃들이 지겠지만 꽃을 보고 꽃을 느끼는 한 우리의 청춘은 영원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