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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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면서 가사도 서로 분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아직 집사람 덕분에 밥을 잘 얻어먹고 다닌다. 그런데 저녁은 집사람이 차리지만, 아침엔 서로 출근 준비로 바빠, 집사람이 국을 끓여 놓으면 내가 떠서 차려 먹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집사람이 꽃게탕을 끓였다기에 내가 밥을 펀 후 국을 뜨려는데, 냄비에 길게 연결된 손잡이가 오른쪽에 가 있다. 나는 평소 냄비를 왼손으로 들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국자를 잡기에, 나를 기준으로 하면, 손잡이가 왼쪽에 가 있는 게 정상이다.

통상 오른손잡이 남자의 경우, 왼손으로도 냄비를 들어 올릴 힘이 있기에, 왼손으로 냄비를 든 후, 오른손으로 국자를 잡고 국을 뜨니, 손잡이가 왼쪽에 가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날 손잡이가 오른쪽에 가 있는 것이 이상하여 내가 집사람에게 언제부터 왼손잡이가 됐냐고 물은 것이다.

그랬더니 집사람은, 자신이 무슨 힘이 있어 그걸 왼손으로 들겠냐고 나를 나무란다. 힘이 없어 오른손으로 냄비를 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집사람 덕분에 잘 먹어 힘이 남아돌면서도 집사람의 여리디 여린 손목과 마음을 몰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날 집사람에게 타박 들어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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