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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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06:42
우울한 세상에 비가 온 뒤 비치는 무지개만큼 아름답고 희망적인 것이 또 있을까? 빨주노초파남보, 색깔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다. 봄 되면 비가 자주 내리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무지개를 우리가 매번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원리야 일정할 테니 어쩌면 무지개는 비가 내릴 때마다 만들어질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비 올 때마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고, 내가 쳐다보는 곳에만 무지개가 생길 수는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보지 못할 뿐, 무지개는 항상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무지개가 언제 어디서 뜨든, 꽃을 피우는 것이 하나의 희생이듯, 빗방울이 무지개를 피우는 것도 희생과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들이 빗물과 함께 내려오지 못하고 대기에 남아, 빛에 산란되는 고통, 자신을 속속들이 투시당하는 고통, 증발당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피워 올리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 내 눈에 무지개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나에게 아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앞은 아닐지라도 세상 어딘가 꿈과 희망이 절실한 곳에서 물방울들은 눈물을 흘리며 무지개를 피워 올리고 있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오늘, 무지개는 피지 않았어도 함께 내려오지 않은 빗방울들이 서쪽 하늘 높이 둥글게 매달려 희망꽃을 피우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느 산골 자그마한 계곡 어딘가에서 예쁘게 핀 작은 무지개가 어린 생명들에게 세상에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을지 모른다.
-나동수 수필집 "시와 당신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