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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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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나는 아직 내 소유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집도 없다고 어머니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하고, 가끔 집사람도 흔들리기도 하지만 착한 집사람은 아직 나를 믿고 잘 따라주고 있다.

내가 집이 없으니 집주인이 비워달라는 등의 이유로 가끔 이사를 다니는데, 요즘은 포장이사를 하므로 내가 별로 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반드시 챙기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 손이 잘 안 닿는데 보관해 둔 허름한 메리야스 박스다.

그 안에는 내 젊은 시절이 들어 있다. 대학시절 내가 주연을 했던 영어연극 대본과 팜플릿, 내가 발간했던 학회지, 군대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그녀가 내게 보내온 수많은 쪽지들, 그 외 잡동사니 추억들.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전부 소중한 나의 젊은 날 추억들이다. 꺼내 본지 제법 되었지만 쪽지 하나하나가 소중한 추억이다. 일부러 깊이 감춰 두진 않기에, 혹시 집사람이 열어봤을지 모르지만 그 정도 추억이야 용서해주지 싶다.

편지를 주제로 시를 쓰다 보니 저렇게 길게 애절하게 적었지만, 이젠 그냥 아련한 추억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저 메리야스 박스를 버리라고 한다면 아마 나는 저항할 것이다. 저 메리야스 박스는 땅속 깊이 파묻어 놓은 나의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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