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채울 시간
동안
0
150
06.11 05:43
꽃은 예전에 다 떨어졌고 이젠 날이 상당히 더워 벌써 한여름처럼 느껴진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더우니 탱자나 복숭아 열매가 벌써 제법 알이 굵다. 어쩌면 저 나무들도 즐거운 시간은 다 보내고, 이젠 내실을 다지며 폭염 속에서 열매를 익히고, 다가올 태풍까지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 나무는, 매년 꽃을 피웠다 떨구고 열매를 익혀 씨를 뿌렸기에, 자연의 이치를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야 한 번 사는 인생, 화려한 시절이 그렇게 금세 사라져 갈지 어찌 알았겠는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오만을 떨어도, 알고 보면 저 나무보다도 지혜롭지 못하니, 한차례 비바람에 꽃잎이 다 떨어져 쓸려가고, 그 잔상마저 흐릿해져서야 비로소 후회를 한다.
초여름, 이제 막 꽃을 떨군 나무는 아직 여리기에, 자칫 폭염에 잎이 시들거나 태풍에 가지채 부러질 수 있어, 초여름 밤낮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부실한 가지와 열매는 떨어져 나가겠지만, 남아 있는 가지엔 물이 올라 질겨지고 초록 잎은 더욱 진해져 폭염과 태풍을 견디며 옹골차게 몸통과 열매를 채운다.
한여름 태양이 뜨겁게 뜨겁게 나무를 익히면, 해 질 무렵 노랗게 빨갛게 피어난 열매들이 석양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일 것이니, 잘 익은 가을 찬 서리에 열매를 떨구어도 나무는, 열매가 떨어진 햇수만큼, 기쁨과 아픔을 되새긴 햇수만큼, 몸속에 나이테가 새겨지고 있다. 껍질보다 나이테가 더 얇아진 지금에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