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피의자 유영철氏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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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피의자 유영철氏의 詩

유용선 1 3182
연쇄살인 피의자 유영철氏의 詩

                                        유용선


  나는 범죄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따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늘 시를 생각하고 쓰고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서 시를 통해서 그것을 쓴 이의 심리나 의식상태를 파악하는 데에는 꽤 훈련이 되어 있는 편이다. 따라서 7월 18일 검거된 연쇄살인범 피의자인 유영철씨가 시를 남겼다는 보도는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가 남긴 시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았다.

        온 가족이
        모였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모처럼 많은 대화 나누며
        웃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너무나 행복해
        그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았습니다.
        오랜 시간 흘러
        그 때의 사진을 다시 꺼냈습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가족 모두를 껴안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품에 자식 모두를 안고 싶어
        정말 힘들게도
        겨우 모두를 안고 계셨습니다.

  내가 이 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글쓴이가 시의 어미처리를 철저히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형으로도 부족해 첫줄의 '모였던'은 '모였었던'으로, 다시 말해 완료된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대화와 웃음은 '모처럼' 이루어진 것이었고, '너무' 행복했던 그 순간의 기억은 사진 속에 있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꺼내기까지 또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그는 진술한다. 그리고 다시 꺼낸 사진 속에서 그는 새로운 점을 발견한다. 어머니가 자신을 포함한 자식 모두를 힘겹게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자식 모두를 안고 싶어하셨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몹시 힘드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는 동안 정말로 자식 모두를 안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도 힘들어 보인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어렵지 않게 사진 속의 인물들이 곤고하게 살고 있으며 시를 쓴 이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의 현실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내가 주목한 부분은 글쓴이의 행복이 사진에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사진밖, 곧 현실의 어머니는 그녀 또한 사람인 이상 자식 모두를 한결같이 안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현실 속의 어머니는 유씨에게 있어 가정의 일원으로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존재인 동시에 인정하기 싫은 현실 속의 혐오스럽고 귀찮은 존재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정이 그 자체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사회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유씨의 시는 끝끝내 사진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진술을 끝마치고 만다. 사진 위로 화자의 눈물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사진 속의 모습보다 더욱 여윈 어머니가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여운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가 그 뒤로 어떤 생각과 감수성으로 현실의 삶과 사회에 대응했는지는 이 시 속에는 더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이 시를 쓰고 난 뒤에도 과연 시쓰기를 계속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현실로 드러난 것은 사회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끝간 데 없는 분노와 광적인 연쇄살인이었다.

  불행하다는 생각은 행복을 나의 과거 또는 먼곳에 있었던 것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엽기적인 살인자가 쓴 시 속에서 행복은 철저한 과거였고 연민은 사진 속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시를 통해 한 사람의 의식 속에 들어가 보려는 시도를 멈춘다. 행복을 자신의 눈길이 머물고 손길 닿는 곳에 심어서 키우려 들지 않고, 사진과 텔레비전과 스크린과 모니터에 그것이 들어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시대의 병적 증후군이 아니던가? 아무리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려 애써도 끝끝내 자기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 먼곳에 있는 행복을 찾아다니는 파랑새 증후군 말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 속에서 살인자의 범죄심리를 어느 정도 스스로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이 사랑스러운 까닭과 혐오스러운 까닭은 동일하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참아야 할 의무'만 자꾸 짊어지게 하고 끊임없이 악을 주입하는 범죄교습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근묵자흑(近墨者黑)과 근주자적(近墨者赤)의 피해자들이 자꾸 세상을 더욱 검고 붉게 만들고 있음에 이렇게 속수무책 무방비여도 되는 것인지? 무엇으로 어두움을 밝히고 무엇으로 피비린내를 씻을 수 있을지 우리는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1 Comments
김한규 2004.08.03 12:09  
"다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저 또한 공범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