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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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가로등]

옛날에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리어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북적대던 구도심 주택가의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나 신도시로 다 빠져나가니 이제는 사람도 없고 황폐해졌다.

낮에 가끔 구도심 중심지인 재개발지역을 지나다 보면 붉은 글씨로 철거라고 적혀 있고 집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데 집 밖에까지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낮에도 그렇게 을씨년스러운데 밤에는 어떻겠는가?

그래도 아직 철거가 시작되지 않은 곳에는 군데군데 불빛이 있고 골목에는 희미하게 가로등이 비치고 있다. 그 가로등은 그 지역의 밤을 밝히며 함께 밤낮을 지켜온 파수꾼이요 희망의 등불인데 이젠 그도 늙었다.

예전과 달리 가로등의 기둥 피복이 벗겨지면 제대로 페인트칠도 안 하니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고 비가 오면 핏물처럼 붉은 녹물이 바닥을 적시며 흐른다. 그러나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도 가로등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가 아직도 불빛을 깜박이며 아무도 오지 않는 밤길을 밝히는 것은 아마 자신이 지켜온 마을에 대한 사명감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그 옛날 가로등 아래서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떤 여인과의 데이트를 회상하거나, 아니면 그 옛날 가로등 밑에서 미래를 기약하던 젊은 연인들의 약속을 이루어주기 위함인지 모른다.


-나동수 수필집 “시와 당신의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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