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연서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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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05:45
세상엔 무수히 많은 나무가 있고, 세상엔 무수히 많은 연인들이 있었다. 세상의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 나뭇잎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바람에 날려 보내고, 세상의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다하지 못한 말로 가슴을 물들였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연인들이 서로 잘 소통하여 아무도 안타깝게 헤어진 연인이 없었다면 아마 나무들이 저렇게 속으로 애를 태우며 나뭇잎을 아름답게 물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못 하여 연인들이 헤어지고, 계절 하나만 지나도 녹아 사라질 원망, 조금만 더 생각해 봐도 세 개는 깎여 나갈 오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해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헤어졌을까?
숲이 아무리 깎여 나가도 세상엔 아직도 무수히 많은 나무가 있고 나무들이 다 하지 못하여 애를 태운 말들은 계절이 지나면 아름답게 물든다. 그녀를 사랑했던 마음은 붉은 나뭇잎으로, 그녀를 원망했던 마음은 갈색, 그녀를 그리워했던 마음은 노란색으로.
나무의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 세상 끝까지 전달될 때쯤 되면 한 닢 두 잎 나뭇잎이 떨어진다. 그녀가 어느 땅에 있든, 그녀가 어느 가을에 알아볼지 모르지만 나무는 무수히 많은 엽서를 보낸다. 올가을에도 벌써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나동수 수필집 “시와 당신의 이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