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 강려후

홈 > 시 백과 > 시집소개
시집소개
 
새로 나온 시집, 소개할 시집을 반드시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 강려후

강 려 후 0 4104
자서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말 없는 소녀였고 말 없는 여자였습니다. 말이라는 걸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주위는 언제나 낯설었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며 둑길을 걷습니다.
  순결한 자연, 바람이 사랑이고 빗소리가 연인입니다.
  아름다움과 눈길을 맞출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시를 쓴 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부끄러움이 가셨나 봅니다. 푸른 꿈을, 마그마처럼
붉게 끓는 사유를 책으로 엮습니다.
  독자의 가슴에 한 줄기 바람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고마운 분들에게, 내 가족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선의산을 바라보며
                                                                  강 려 후

 
작가 프로필
詩人 . 소설가 
대구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시 분과)
대구문인협회 회원(소설 분과)
E-mail : krh8788@hanmail.net
Home Page : www.kll.co.kr (강려후)

수상
* 詩 {그림안으로 나오다}로 여성문학상 수상 
* 수필 {어머니의 거울}로 김유정문학상 수상 
* 수필 {할머니의 독백}으로 여성문학상 수상 
* 소설 {첼리스트의 초대}로 시사문단신인상 수상 
* 詩 {빛으로 가는 티켓}외 4편으로 대한문학신인상 수상 

저서
# 시집 {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출간 
시. 수필 등 등, 동인지 발간에 다수 동참


# 시집 {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차례

자서                                 
         
1부 매화 피었다
黃龍 … 11
블루 블랑 … 12
매화 피었다 … 14
러시아 少女 … 15
부토니아 … 16
새벽 비 … 18
사진 속의 연인 … 19
그 사람 … 20
해당화 … 22
사랑하기 전 사랑 잃다 … 23
그랬지요 … 24
아이스 와인 … 25
보고 또 보고 … 26
있잖아요 … 28
꽃무릇 … 30

2부 누란의 눈길
휘파람새의 웃음소리 … 33
그림 안으로 나오는 … 34
서원 … 36
계수나무에 걸린 코 … 37
발 시린 그리움은 … 38
떨잠 … 40
손 씻는 여자 … 41
두류산 … 42
누란의 눈길 … 44
쓸쓸한 길 걷고 싶다 … 45
지난 호출 … 46
해금강 … 48
그 여자 드뎌 행복해지다 … 49
점안법회 … 50
마그리트 … 52

3부 유월의 편지
화가의 연인은 … 55
참꽃과 목련화 … 56
사시나무 … 57
어머니 … 58
대금산조 … 60
빗소리 내게로 오다 … 61
화두 … 62
삭발을 하고 싶었지만 … 63
하얀 노을 서창에 어릴 때 … 64
폭풍우에 기대어 … 66
진눈깨비 … 67
아셔요? … 68
사향제비나비 … 69
유월의 편지 … 70
벼꽃 피었다 … 72

4부 극락사 逍遙
놋그릇을 닦으며 … 75
장독대 … 76
白蓮茶 … 77
빛으로 가는 티켓 … 78
내원사 素描 … 80
극락사 逍遙 … 81
봄비 … 82
이아손 … 83
업 … 84
月竹 … 86
눈물이 … 87
담 … 88
엔젤폴 … 90
토지에 들어가다 … 92
강으로 온 비는 별이 된다 … 93
가을 … 94

해설
결벽과 망설임에서 모성에 이르는 과정
손진은 … 96


□ 해설 □
결벽과 망설임에서 모성에 이르는 과정
손 진 은 (시인, 경주대 교수)

시라는 것이 원시종합예술에서 분화되던 만고 이전의 시대부터, 서정시에서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보다 더 절실한 주제가 있었을까. 우리의 핏줄 속에서는 자고이래로 사랑과 이별로 인한 애틋하고도 한스러운 감정을 다룬 시들이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시들에서조차도 이런 감정은 세련되고 낯선 어투로 다루어져 왔던 것을 생각하면, 사랑을 비롯한 인간의 원초적 감정은 시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또한 가장 많이 노래불려질 주제가 될 것이다.
강려후 역시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서정시의 범주에 들면서도 그만의 시법을 독자적이고 개성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을 통해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를 여타의 시들과 구별되게 하는 독자적인 미학은 무엇인가. 아마 결벽증으로 빛나는 여린 감성의 미묘한 떨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시는 인간의 내면에서 생기고 번지고 소멸되어 가는 그 감성들의 미묘한 무늬들을 자연이나 사물에 빗대어 노래하는 감정이입, 즉 투사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시편들을 따라 읽어가다 우리는 더러는 함께 연민을 느끼고 아프고 슬퍼하고 분노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그 감정들의 무늬는 여러 겹으로 쌓여서 우리 마음의 결을 짚으며 훑어내린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조차도 그 무늬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그의 시편들의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는 한 편의 시를 본다. 

매화 피었다
매화 보아라
제자는 매화를 보고
스승은
드리운 문살을 세고 

산 속에 눈 속에
문살 속에
매화 피었다

벙어리 매화 피었다
가지도 없는 둥치에
백매화 환히 피었다

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문풍지
절로 푸르르 떤다.
― 「매화 피었다」 전문

이 시는 매화가 피었으니 매화를 보아라는 스승의 전갈(혹은 전화)로 시작된다. 그 매화는 잎과 꽃이 무성하고 힘차게 뻗은 것이 아니라 가지도 없는 메마른 둥치에 핀 것이어서 더 소중하고 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핀 매화는 문인화에 나옴직한 매화이다. 그러니 푸르르 떠는 고가의 문살을 바라보는 스승의 눈길은 물상의 신묘한 기운에 머물러 있다.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힘으로 충만되어 있는, 눈 속에 핀 매화는 ‘梅一生寒不賣香’(일생을 얼어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어렵게 핀 매화는 경물로서의 매화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마음이 투사된 매화이기도 하다. 산 속에, 눈 속에, 문살 속에 스며들 정도로 은근하고 깊은 그 기품은 은근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不立文字의 경지(“벙어리 매화”)까지도 암시한다. 매화 피었다고 말해 놓은 스승은 정작 눈길을 그 매화 쪽에 두지 않고(“드리운 문살을 세고”) 있고 제자만 본다. 여기서 제자와 스승은 서로 성을 달리하는 존재로 읽힌다. 왜 스승과 제자가 같은 사물을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지 않는가. 매화가 피었다고 먼 곳에 있는 제자를 불러놓고는 정작 눈길을 맞추지 않다니. 이는 서로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는 하고 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표현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귀한 존재이면서, 보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불러 놓고는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고 어긋나게 바라본다. 이 결벽의 시간은 고요한 듯 보이나 뒤척이는 마음이,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는 어떤 기운이 감지되는 동적인 세계를 보인다. 이 때 결벽은 자존감의 다른 표현이다. 흐르고 물드는 시간. 스승과 제자가 들이마신 매화의 향기는 꽃의 영혼일까, 몸일까. 아니면 서로에게 스며든 몸의 향기일까. 이 때 그들의 마음은 매화의 소리 없는 고요한 ‘향’으로, 절로 푸르르 떠는 ‘문풍지’로 심상화된다. 시인은 인간사의 애정이나 인격의 경지를 매화 향이라는 미적 풍경으로 현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가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음에도 내면의 결벽증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시라면 다음의 시는 대상에 대한 소극성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편이라 할 수 있다. 

내 사랑은 나보다 잎들이 먼저 아네, 잎들이 먼저, 떨며 더듬거리기 전 위로하네. 네 키가 네 오지랖이 이미 잎들을 유혹했나 보네.

잎들이 뿜어낸 이내에 싸여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너, 헤어질 수는 더구나 없네. 빛 스러지고 그늘 드리워져 모양 또한 모르네.

가슴에 알 슬어놓고 장미를 뱉어내는 잎들, 생과 삶을 삼키고 긴 트림하네. 그대 생각하기 전 그대 잃고 나, 진흙 속으로 발 뻗네.
― 「사랑하기 전 사랑 잃다」 전문

자신이 호감을 품고 다가가고 싶은 좋은 사람 주변에는 이미 다른 이들이 먼저 진치고 앉아서 나를 경계하며 나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떨며 더듬거리기도 전”인데, 타자들은 대상을 먼저 선점했다고 나를 위로한다. 내가 좋아함직한 대상의 알맞은 키와 따듯한 오지랖이 이미, 잎들로 표현한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라 ‘나’는 서둘러 진단해 버린다. 2연에서 마침내 대상은 “잎들이 뿜어낸 이내에 싸여” 나는 대상에 대한 시선마저 흐릿하게 상실하게 되고, 대상의 “가슴에 알마저 슬어놓고 장미를 뱉어내”며 “긴 트림하는” 그들의 거들먹거림에 화자는 진흙의 수렁 속에서 버둥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이 열망과 두근거림 속에는 이미 시선의 감옥이 존재한다. 그에게 가는 길에는 광장과 골방이 공존하며 사랑과 투쟁이 아울러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시적 화자는 그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하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체념에 빠져버리는 양상을 보인다. 말하자면 외적인 식민지보다는 내적인 식민지를 더 공고히 하고 있는 게 낯가림이 심한 시적 자아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런 결벽의 양상은 반대로 시적 화자 자신이 불화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과도한 거부반응을 드러냄으로써 시적 자아는 세계 속에서 철저히 홀로 있음의 자유를 누리기도 한다.

셔츠 소매를 접어 팔꿈치 위로 쓱 밀어 올린 여자. 비누도 씻고 수도꼭지도 씻고, 거품 퍼렇게 일궈 손톱을 뽑더니 허벅지를 거쳐 배꼽을 닦아낸다.
하늘 멀리,
비수를 품은 눈길로 끈끈한 지문 저며 내고 선 가슴 도려낸다. 그에게 묻은 꽃가루 지우려 뼈 발라내는, 지난날의 필름 지우려 시공을 훌쩍 건너 하루 팔만 번 씻는 등신불의 여자
― 「손 씻는 여자」 전문 

뒷산 소나무 그리메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물망초 꿈꾸는, 에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으로 가더니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세필처럼 가냘프고 고운 음색에서 점 점 크리스탈처럼 청량하고 화려하게, 

순응하면서 살아온 여인의 恨이, 부끄러움이 가신 이제사 자기애로 돌아서서 비상하려는 몸짓이다. 아니다. 번식이 끝난, 일찌감치 번식을 끝낸 여인의 허무한 옛 추억이 솔잎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진 슬픔이다. 다시 귀를 기울여 본다. 원하던 유전자를 가슴에 안은 아낙네의 자궁에서 나온 환희다. 아니다. 천적으로부터 벗어난 휘파람새의 웃음소리다
― 「휘파람새의 웃음소리」 전문
 
첫 번째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불화하는 대상과의 접촉으로 인한 자신의 몸에 대한 공격성이다. 씻는다는 것은 시적 화자에게 ‘그’가 자신의 ‘몸’에 남긴 자욱을 털어내고 지워내는 일상적인 행위를 훌쩍 넘어선다. 이는 여기서 사용되는 어휘들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시적 화자는 씻는다. 닦아낸다, 지운다 라는 동사 외에도 뽑는다. 도려낸다, 저며낸다, 발라낸다 라는 공격적인 동사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의 흔적을 스멀거리는 벌레보다도 증오한다. 어떻게 지문을 저며내고, 가슴을 도려낼 수 있을까. 이는 강려후 시의 개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강렬성은 단순히 과장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염결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는 결벽증을 넘어서는 자기애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우기 방식의 철저성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이 되는데, 그 하나가 신체적인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속된 기억(“지난날의 필름”)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시적 화자는 “하루에 팔만 번 씻는 등신불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시에서 ‘그’는 천적으로 ‘나’는 휘파람새로 의미가 확장된다. 말하자면 천적으로부터 벗어난 휘파람새가 되어 나는 웃으며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소나무 그림자 아래서 들리는 간드러진 가곡과 유행가가 어우러진 노랫소리를 마치 타자의 것인 양 객관화시켜 듣는다. 그것은 두 번째 의미단락에서 “순응하면서 살아온 여인의 한”이 “자기애로 돌아서 비상하려는 몸짓”이라는 진술로 그 의미를 획득한다. 나아가 이 시에서 시인은 시적 화자를 휘파람새로 완벽하게 투사시켜 육화시킴으로써 시적 성공을 이룩한다. ‘여인’/‘휘파람새’의 변용은 ‘출산과 양육’/‘번식’, ‘원하던 유전자’/ ‘자식’, ‘그’/‘천적’의 비유쌍을 거느리게 되면서, “허무한 옛 추억이 솔잎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진 슬픔”이라는 한 편의 짜임새 있는 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이 ‘나’를 일어서게 한다. 마침내 새의 웃음소리로 흩어지면서 우리는 순응하던 여인이 어떻게 자기 삶을 획득하여 가는지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한편의 넉넉한 우화시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시적 화자를 한 마리의 휘파람새로 변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자신의 슬픔을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객관적 거리가 전제되지 않고는 이런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이러한 거리 위에서 강려후의 시는 꿈으로 혹은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로 섬세한 촉수를 뻗으면서 심리적인 안정과 관조를 획득한다.

하늘에는 아이의 하얀 발자국이 동으로 나 있다. 아버지는 푸른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는데, 부엌에 있는 목관에는 부드럽고 커다란 발이 관 밖으로 나와 있다. 세 살 난 오빠는 서성이는 바람에 두꺼운 책을 깨끗이 닦아 우물에 수장하고, 주머니에는 씨앗이 가득하다. 언니들은 난을 피하러 가면서 비단 치맛감을 잿간에 꼭꼭 묻어 두었는데, 성지골에 숨어 있던 기선에 애비가 다 파가 시집도 못 간다며 통곡한다. 빙정옥결氷貞玉潔해 발 시린 그리움은 하! 헤퍼 자리끼에 빠진 광시곡처럼 주절주절 기웃거린다.
― 「발 시린 그리움은」 부분

할머니 손등의 굵은 심줄 같은, 청상의 가슴 뻥 뚫은 멍 같은, 녹 시퍼렇게 돋아 있습니다. 반백년의 세월을 외면당했던 옛 女人네의 손 때 따끈하던 놋그릇들. 어린 신랑에게 시집오신 열여섯 고운 손등으로 스물일곱 붉은 가슴으로 곱게 꼭꼭 흰머리 듬성한 손녀딸 손에 황금빛 활활 승화하고 있습니다. 명경 같은, 아흔 여섯 할머니 가슴에 묻은 열두 아이 눈이 반짝이고 서른아홉 해 어머니의 정화수에도 미소 머금은 아버지 슬며시 얼굴 내미시는군요. 멍울멍울 얼룩진 자국 칡덩굴처럼 서리서리 뻗은 한 하얗게 걷어내니 청렴한 선비처럼 몽울몽울 자미화 피웠네요. 산호잠 참하고 고아한 모습으로.
― 「놋그릇을 닦으며」 전문

첫 번째 시는 꿈에 나타난 장면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시편이다. 예부터 꿈이 개인의 세계관과 영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꿈은 아침에 깨어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또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밤 꿈꾸었던 내용에 비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너무 적고 단편적이다. 그러니 개인에 따라서는 꿈이 유난히 생생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일도 있다. 대체로 강렬한 형상들이 세세히 기억에 남는다. 강려후의 시에서 꿈을 다룬 시편은 이 시 외에도 「빛으로 가는 티켓」도 있고, 의미화되기 전의 감각과의 만남을 노래하면서 솟아오르는 그윽한 기쁨과 황홀의 순간을 향들의 춤으로 묘사한 「블루 블랑」을 비롯한 여러 시편들이 있다. 이들 시와 마찬가지로 이 시편 역시 강렬한 순간과 단편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 과거의 기억들이 꿈으로 재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의 지향을 밝혀주는 시편으로 읽힌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내면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옛 시절에 대한 기억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담겨 있다. 하늘에 찍힌 하얀 발자국, 푸른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시는 아버지, 목관에 불쑥 나온 발, 두꺼운 책을 우물에 밀어넣는 기저귀 찬 오빠, 비단 치맛감을 잿간에 숨기는 언니,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의 순차성도 논리성도 없으나 한결같이 아름답고 정갈한 기억의 마디로 나의 의식 속에 잔재한다. 氷貞玉潔 얼음처럼 곧고 옥처럼 깨끗한 상태, 시인은 이를 두고 발시린 그리움의 세계로 명명한다. 그만큼 옛날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발을 적시고 싶을 정도이다.
두 번째 시는 해원解寃의 야상을 띤다. 손녀딸은 놋그릇을 닦으며 할머니와 어머니의 그 한과 신산스런 세월을 하나씩 벗겨내어 치유한다. 열두 아이를 건사하시고 아흔 여섯에 훌훌 이생을 벗어버리신 할머니의 삶도, 서른아홉 해 동안 정화수를 떠놓고 지아비를 그린 어머니의 삶도 녹인다. 놋그릇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니 이 땅의 여인들의 삶이 오롯이 밴 기물이다. 기물들이 삶을 거느리고 있는 예는 프랑시스 쟘의 「식당」이라는 시와 백석의 시들이 대표적이지만, 쟘 시에 나오는 뻐꾹시계와 장롱 같은 기물들은 옛 식구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과 같은 존재라면, 강려후 시의 놋그릇은 여성적인 삶들이 오롯이 배어 있는 여성들의 몸이자 삶의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해원이라는 말을 앞에서 한 것도 그런 맥락인데, 화자인 손녀딸은 지금 할머니의 몸을 만지듯 놋그릇을 닦아내고 있다. 그리하여 녹은 손등의 심줄, 청상의 가슴에 뚫린 멍이 되고, 그 멍들은 수십 년이 지난 이제사 손녀딸의 손끝에서 황금빛으로 승화된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정화수에 비쳐오던 아버지의 모습도 얼굴을 내밀면서 화자 안에서 하나가 된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그 힘든 세월은 이제 화자의 손 안에서 몽울몽울 배롱나무꽃을 피운 채로, 산호비녀를 꽂은 모습으로 피어난다. 
어디 그뿐인가. 시인은 이제 힘없는 자식 아이까지 거둬 감싸안는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에 대한 결벽증으로 시작한 강려후의 시가 결국은 이 땅의 어머니와 자식들을 껴안기 위한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미정원
을 거쳐 온 바람도 얼음산에 핀 한 송이 꽃도 저 코 꺾을 수 없음이다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안하무인의 어미,

저 어미의
눈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우뚝하게 세운 당신의 분신뿐, 주위는 온통 해수면 아래에 있다 약하고 어린 아이를 둔

둥근 달빛
― 「계수나무에 걸린 코」 전문

이 시는 달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한다. 그것은 개인이면서 또한 세상의 모든 어미라 할 수 있다. 그 달 속에는 코도 눈도 있다. 코는 얼굴의 부위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얼굴 중앙에 오뚝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관이고, 눈은 뚫려 있는 부위이다. 달 속에서 시적 화자가 보는 코와 눈은 아마 볼록하게 나온 부분과 쑥 들어간 부분을 지칭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달에서 불룩하게 나온 부분을 꺾을 수 없듯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집착과 헌신은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움푹 파인 어머니의 눈에는 “당신의 분신”인 자식만 들어갈 수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다 “해수면 아래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약하고 어린 아이를 둔” 어미의 마음 때문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세상의 중심이 내 안에서 이동하여 바깥으로 번진다고 한다. 시적 화자는 어미인 자신의 몸을 달로까지 확산시키면서 힘없고 나약한 자식을 껴안고 있다. 어미가 없으면 안 되는 것들, 이 세상에서 남들은 돌보지 않는 것들, 하잘것없는 것들에까지 두루 미치는 이 눈길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아도 “벽오동 파르르/꽃빛 부시다”(「새벽비」), “떨리는 손끝으로/떨며 떨며 빚어 바쳤나”(「떨잠」), “그대 눈길에 파르르 떠는/영원한 유월의 신부로요”(「부토니아」), “전율하듯 청중앞에 우뚝 서지만”(「러시아 少女」) 등에서 나타나듯 망설임, 말없음, 떨림 등으로 현현하던 그의 시들은 시적 화자의 마음을 자연현상에 이입시키는 투사의 속성을 통해 자신의 뿌리인 여성들, 나아가 자식들을 애틋하고 소중하게 껴안고 가는 어미의 시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라하고 희미한 것들, 다른 이들의 눈길 한번 받지 못한 것들까지 말없이 보듬어 안는 이 시선은 모성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강려후의 시는 여성성이 누구보다도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결벽은 오히려 모성의 발현으로 크게 성숙되기 위한 예비단계이었던 셈이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