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옥 시인 첫 시집 출간

홈 > 시 백과 > 시집소개
시집소개
 
새로 나온 시집, 소개할 시집을 반드시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전창옥 시인 첫 시집 <西便 門을 나서다> 출간

전창옥 시인 첫 시집 <西便 門을 나서다> 출간
-사람과 세상을 향한 자비로운 울음 소리를 듣다

전주 우석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전창옥 교사가 세상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 남몰래 쓴 시를 통해 시인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보듬어왔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작품들은 세상의 유행과 거리가 있지만 읽는 이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신선함과 더불어 오랫동안 망각했던 시심을 되찾게 해준다. <西便 門을 나서다>(전북대출판문화원, 건지시인선01)에서 시인의 화두는 슬픔(자비)을 줄기로,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을 향한 분노, 불계의 상상력에 바쳐진다.

아버지 가신 밤
거지들 모여 울었다.('동짓달 스무이튿날' 전문)
 
집안의 내력 같은 그의 범상치 않은 마음의 출발이, 어머니의 고생을 떠올리고 누이의 죽음을 맞으면서 갖게 되는 인간 고뇌의 슬픔을, 자비심으로 감싸 안는 자기 극복을 통해 이겨내려 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한 '반야용선(般若龍船)'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한다.

보제루 사월의 계단/ 어깨 버리고/ 내 사람 가네//
소슬비 쓸고 간 바람/ 벚꽃잎 배를 띄워/ 물결 따라 젓는 손//
한 계단 더 올라/ 붙잡는 그림자는/ 내 사랑의 신기루//
기운 탑에 기대는 노을/ 부챗살 머리 풀면/ 마음은 목어//
저녁연기 잿빛 수의로/ 홀로선 석등을 휘감고/ 낮은 풍령 소리//
절집 사월의 계단/ 어깨 버리고/ 내 사람 가네//

사람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눈물겨움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불의와 불합리를 목격할 때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분노는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향한다.

동해의 게야/기어서 나오라//
검은 파도 뚫고/기어서 나오라/게야//
네 두려움이/바다 속 어둠이고/네 목마름이/한낮의 백사라면//
저 높은 설악 넘어/광화의 큰 문으로/게야/기어서 가자(「여름, 1980」전문)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질타의 목울대를 높이기도 한다.

'눈을 뜨고/바람에 벼리는 눈을 보아라/그 속에 볼 수 없던/지워진 눈들이 있으리니/감았던 눈을 떠/망막에 쏟아지는 눈을 보아라('장님의 눈' 일부)'

시인은 평소 불심이 깊기도 한데, 그로 인한 상상력의 확장이 불교의 자장에 이끌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어지고 세속과 열반의 세계가 연결되기도 하고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가 되는 법열의 정신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석양이 구름 사이로/홍자 빛 화살을 뿌려놓고/자운영 가득한 들을 떠나면/하늘은 별이 가득한 술상/우주는 손안에 촐랑대는/작은 술잔 속의 섬/손톱만 한 배로 떠있다('만행(漫行)')처럼 활달하다가도 다음처럼 시작하는 '대적광전 기둥'은 신앙시 같으면서도 '붙들림'과 '달아남'의 변증법적 미학을 거쳐 숭앙의 태도를 더욱 견고히 하는 불교적 아름다움을 창출해낸다.

'비로자나불은 알고 계셨을까/내가 오대산 전나무 밭에 몸 박고 서 있다가/때 오면 저잣거리 주막 기둥으로 가버릴 것을/그래서 주춧돌 위에 꼼짝 못하게 세워놓고/법당 안 당신의 수인에 종일 눈길 꽂고서/천년 침묵으로 서 있으라 하신 것일까.'

시인의 초기 시는 형용사까지 배제하는 이미지즘에 경도되었던 것 같다. 도처에서 그런 경향을 음미할 수 있다.

'해 뜨는 팔달령 망루/웅크린 거인의 등에 솟은/저 굵고 붉은 힘줄(일출)'
'골짜기 곳곳으로 밀려오는/ 파르티잔들의 진격을 보라//폭죽처럼 터지는 포화에/스스로 쓰러지는/녹색 군사들(단풍에 관하여)'
'천만 년 물 위에 물이 쌓여/화석으로 누워있는 겁의 세계에/내려치는 찰나의 뇌문(불일폭포)'

가장 빨리 우는 이가 있을 테지만 그는 가장 길게 운다. 술을 먹고 우는 이가 있다지만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술 취한 것처럼 운다. 그렇게 슬퍼하는 이가 있기에 우리 세상의 아픔은 그래도 이만큼 정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