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생가와 백두산 들쭉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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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생가와 백두산 들쭉밭

이상묵 0 1488
시인 한혜영님(미국 플로리다 거주)의 서평

이상묵 시전집 '링컨 생가와 백두산 들쭉밭'

* 20년 전 본국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을 했고 현재는 미주 한국일보 공모시 심사를
  맡고 있는 한혜영님께서 시전집을 읽고 난 서평을 Face Book 에 올리셨기에 전재합니다.

 
며칠에 걸쳐 이상묵 선생님의 시 전집인 『링컨 생가와 백두산 들쭉밭』(시한울)을 읽었습니다.
이상묵 선생님은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해서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해외동포시인입니다.

본국을 떠난 지 47년째! 그 동안의 발자취가 이 책 한 권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1부: 제 1시집 링컨 生家에서(1993)
•2부: 제2시집 백두산 들쭉밭에서(1996년)
•3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언덕에서
•4부: 애리조나 선인장 외
•5부: 문화와 역사의 기행시편

이렇듯 총 5부로 나누어진 시 전집입니다. 이미 출간되었던 『링컨 生家에서』, 『백두산 들쭉밭에서』
두 권의 시집을 비롯해서, 미처 시집에 넣지 못한 작품과 이후 제작된 시를 총정리해서 한 권으로
묶은 듯합니다.
작품마다 사진이나 그림이 있고 발표한 지면이라든지 제작 연도가 적혀 있어서 이해하기가 좋았습니다.

‘창작과 비평’, ‘문학사상’, ‘현대시’, ‘녹색평론’, ‘실천문학’, ‘작가세계’, ‘통일샘’ 등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잡지에 꾸준하게 발표를 해오셨네요.
그런데도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별로 접한 기억이 없습니다. 미주에 살면서 본국 잡지를 여러 가지
구독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선생님의 시 전집을 읽는 일은 새롭고도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서문에서도 나와 있지만, 묶인 시들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민자로서의 캐나다 생활과
연관된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 반세기였던 1995년 북한을 방문하고 썼던 기행시들입니다.
이 밖의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하고서 썼던 기행시와 연작시가 제법 보였지만, 저 역시 이민생활과
북한 기행시에 맞춰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책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갈 수 없을까/그 절구 속으로/나는 다시 결코 들어갈 수 없을까/
절구에 가득 보리를 넣고/어머니는 공이를 내리치면서/날보고 보리를 저으라고 하셨다/
빨라지는 공이질/넘쳐나는 소용돌이/자꾸만 보리알들 흩어지면서/나는 끝내 밖으로 새고 말았다
/아, 그게 몇 십 년 전 일이던가/어머니가 노기 띠며 나무라시던 것이/낯선 땅에 떨어진 지 벌써
까마득/보리톨 하나가 그리도 아까웠었는데/그러나 이제야 알겠어요/어머니/공이에 얻어맞아
알갱이 되고/보리끼리 부대끼며 껍질 벗는다는 것을/그리고 또/잔돌과 섞였으니/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절구를 생각하며」 전문 -‘문학과 비평’ 1988년 가을호에 게재

“빨라지는 공이질/넘쳐나는 소용돌이/자꾸만 보리알들 흩어지면서/나는 끝내 밖으로 새고 말았”던
보리알갱이는 눈 깜빡할 사이에 아득한 타국 땅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흘러 그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보리끼리 부대끼며 껍질을 벗던, 잔돌 섞이지 않은 시절’,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지요.
조국의 품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이기도 한 ‘절구’를 매개로 한 이민자의 고단함과 향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민자들에겐 분리 불안증을 느끼는 아이가 심중 어딘가에 잠재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향과 피붙이와 헤어진 후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 강제로 내몰린 디아스포라가 아닐지라도
이민자에겐 숙명처럼 그런 것이 있지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지고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꿈을 꾸며 현실을 버텨내는. 이상묵 선생님 역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강어귀까지 흘러온 나는/지금 무슨 보호색을 발하고 있는 것일까/우리 오누이들 한 방에서
/함께 덮던 이불 위에 그려진 원앙” (사이드 로드 2)을 또렷이 기억하기도 하고,
“나 젊었던 육군 소위 시절/불치의 병으로 어머니/입원해 계실 때/밤새껏 부채질 해주던
/소녀 간호원” (사이드 로드 4)까지 그리워하지요.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밤이면 산에서 빨치산들이/
딱꿍총을 쏘면서 내려오” (10살 즈음의 그 도시)던 소년시절과 “손바닥만한 게임기를 쥐고 손톱끝으로/
화면 속의 전쟁게임이나 하는 어린 손자” 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청춘에 캐나다에 와서 아이들을 낳고 교육을 시키고,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이민 1세의 갈등도 자주 나타나네요.

새벽 하늘은/일찍 일어난 사람을 위해/깨끗하게 닦아 논 거울 같다/거울 속에서 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몸을 숨긴 채/누구인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어릴 적 아버지와 형/
큰 소리로 서로 부딪히던 모습/어젯밤 나도 아들과 부딪혔고/토막 난 영어로 얼굴부터 붉혔고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지요/말하던 서울의 동생을 생각했다/샌드위치 봉투를 들고
/어제와 똑같은 시간의 노동을 위해/이 아침 중고차의 엔진에 시동을 건다/하늘 속에서
/아버지와 형의 얼굴이/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을 하늘」전문 -1988년 9월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온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하게 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능숙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부모의 노력이 절실하지요. 하지만 바쁜 이민생활에서
점차 지치게 되고, 결국엔 포기를 합니다.
소통은 점점 원활하지 않게 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그만큼의 틈새가 생기지요.
 “아들 두 녀석은/내가 지어준 이름 놔두고/영어 이름으로 호적을 바꿨는데/
레드 딜리셔스는 홍옥으로/매킨타시는 국광으로/바꿔 부르는 고국의 사과 이름들”
(시선視線)이라며, 섭섭함을 느끼는 경우도 생기고요.
겉은 황인, 속은 백인인 “익어도 꽤 익은 바나나” (데이비드)라는 은어를 깨닫고 좌절하는 아이들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상처를 받지만 그 또한 극복을 하며 성장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학 졸업과
함께 직업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지요. 그러는 동안에 부모는 은퇴를 하고 손자를
돌보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때가 찾아오고요.

이상묵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의 세월을 따라갑니다.
“치실로 이 사이의 찌꺼기를 끌어올리는데/
문득 이를 붙들고 있는 것은/잇몸이라는 생각이 든다/영구치 송곳니도 밑동이 드러나는 걸 보면
/언젠가 잇몸을 떠날 때가 올 것” (뿌리 깊은 나무)을 문득 깨닫는 시간을 지나
 “아들이 남기고 간 강아지와/저녁 산보는 일과가..." (방범등) 된 시절을 살게 되었는데, 그나마 이런 시간이
찾아오기까지는 얼마나 고단한 생활의 연속이었을까요. 그것을 잘 드러낸 시가 마침 보여서 소개를 할까 합니다.

시동이 잘 안 걸리던 낯선 땅
한 겨울 새벽
엔진을 풀어야 했다
흡입-압축-폭발-배기
희-노-애-락의 인생 4행정
응어리의 폭발 부서짐 뒤에
출력의 기쁨 뿜어 나오고
디스트리뷰터 캡을 열면
눈 코 귀 입술 이마 눈썹
기통들로 가는 6개의 접점들
포인터가 빠짐없이 어루만져 줄 때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네
점화 케이블을 뽑고
스파크 플러그 간극을 본다
2만 볼트 고압에의 불똥이 건너자면
닿을 듯 말 듯 0.5mm의 틈새여야 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르가즘의 폭발을 위해
상사점 8도 전에 불똥을 튀겨줘야 하겠지
지금은 퓨엘 인젝션 엔진
모든 걸 컴퓨터가 알아서 하고
새벽 같이 얼어날 일도 없지만
그때는 닦고 기름 치고 어루만지던
그래서 하루하루가 또 다른 전투
부딪치고 찌그러진
‘애마(愛馬)’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꼭두새벽 한 몸이 돼 일터로 나가야 했다.
-「튠업」 전문 -1990

이제부터는 두 번째 시집『백두산 들쭉밭』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썼다는.  조금 놀랄 수도 있지만, 이민자에게 있어 북한은
조금 다르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휴전중이니 엄밀하게 따져서 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나, 머나먼 타국에서 건너다볼 때에
심증적으로는 국토가 먼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클 수도 있습니다.
하나가 된 우리의 조국이 보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비극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40년 만에 찾게 된 부인
또 만나러 온 한씨
그 동안 다시 시집 가서
남의 자식 낳은 사람이지만
남자의 첫사랑 지울 수 없네
전쟁 때 남으로 내려가
재혼한 부인은
그의 지갑 속
색 바랜 젊은 여인의 사진 한 장
아는지 모르는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눈감아 주는지
그래서 잘 다녀오라고
비행장까지 따라 나오는 건지
늘그막에 토론토와 평양을 오가는 한씨
아내가 아닌 아내를 만나고 온 다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자정 지나도록 호텔 로비에 나가 있더니
떠나는 날 새벽 말없이 또 방을 빠져 나가는 한씨.
「지갑에 든 사진」전문 -1995년 8월

남으로 내려와서 새 가정을 꾸린 남자는 캐나다로 이민을 옵니다. 그리고 그는 첫 부인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하지요.  이미 재혼을 해서 남의 아내가 된 여인을 만나러 가는데, 현재의 부인은 애써 모른 척해줍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눈감아 주는지” 모르겠지만 여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거지요.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자며 맺은 혼인언약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 것이 어디 이들 뿐이겠습니까.
이밖에도 수많은 비극을 낳은 것이 전쟁인 것을요. 

원산의 송도원 여관/함경도 어느 산골에서/기차를 타고 찾아온 여인/외사촌 오빠의 팔을 놓지 못하네/
평양으로 돌아가는 해외동포들/점심을 하기 위해 머무른 한 시간/사진 찍는 것도 싫다고/
오빠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빗속으로 뛰어든 여인/온 얼굴의 주름살이/
그녀의 눈자위에 몰려들고/그 순간/눈앞의 유리창이 흐려지면서/한 줄기 빗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네.
「송도원 여관 1」 전문 1995년 8월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사진 찍는 시간조차 아까워 외사촌 오빠의 얼굴만 바라보는
주름 성성한 여인의 얼굴이 영상처럼 잡힙니다. 이밖에 ‘성묘’라는 시에서도 안타까운 모습이 등장을 해요.
백발이 성성할 때서야 아버지 묘 앞에 앉아
“차례로 비석에 술을 뿌리고/아버지 침상 앞에 나란히 앉네/서로 따라주는 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말없이 음복” 을 하는 배다른 남매가 나오거든요.

“남도의 초등학교 시절/강당에 걸렸던 초상화를 다시 만나네/그때나 지금이나/그곳이나 이곳이나/
민족의 시조는 한 얼굴” (단군릉)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요.

평양-원산 고속도로
중간지점에 있는 휴게소
돌버섯, 두릅, 산청꿀을 팔고 있네
그리고 또 팔고 있는 것은
산그림자 싣고 가는 여울물과
판매원 아가씨들의
박 속처럼 흰 살결
평양-원산 고속도로 상
하나밖에 없는 휴게소에
햄버거나 콜라는 보이지 않네
대신 황구렁이술 한 잔에 3원
술독처럼 큰 유리병 속에서
이 땅의 흙으로 지은 누런 옷을 입고
육중하게 또아리 튼 구렁이가
머리 들고 노려보네
이 땅에서 팔아야 할 것과
팔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고
「신평 휴게소」 전문 1995년 8월

시인은 열악한 북한 시장을 통해 오히려 자본주의가 삼켜버린 남한을 말하네요.
88올림픽을 치렀고, 대다수 남한 국민은 피자와 햄버거와 콜라에 길들여져 있었으니까요.

“이 땅의 흙으로 지은 누런 옷을 입고/육중하게 또아리 튼 구렁이가/머리 들고 노려보네/
이 땅에서 팔아야 할 것이/무엇이라는 것을/알기나 하느냐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외래문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몇 번의 검문을 거쳐
들어선 철조망 속
여름은 무성하였네
무논을 가득 채운 벼들
논두렁길에도 심은 콩들
강냉이밭 수수밭
그리고 목화밭도 보였네
‘자립’의 물레 느리게 젓던
앙상했던 빗장뼈 인도의 간디처럼
분계선 북쪽에는
사라진 옛것들이
아직 있었네
옷 한 벌 지어 일생 입는
눈부신 흰 옷의 백로 한 쌍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지뢰밭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네.
「판문점1」 전문 -1995년 8월

“자립’의 물레 느리게 젓던/앙상했던 빗장뼈 인도의 간디처럼/분계선 북쪽에는
/사라진 옛것” 들이 있음을 시인은 오히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네요.
도도한 세계의 물결에 너무나도 무섭게 휩쓸리고 있는, 그로인해 피폐해지는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런 만큼 커지는 남북의 간극도 걱정이고요. 그러기에  “눈부신 흰 옷의 백로 한 쌍” 이
시인의 간절한 바람으로 읽힙니다. 우리가 백의민족이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겠지요.

고려민항 비행기엔 이런 것들 없었네
북경에서 에어캐나다 비행기에 오르니
샤넬 향수며 무관세 사치품 명세서 나눠주네
2주 동안 끊겼던 세상
스튜어디스에게 타임잡지를 부탁했네
8월 21일자 표지엔
놀랍게도 북한 지도가 나왔네
펜타곤에서 북한을 공격하는 장면이었네
금강산 관광안내원 혜경이가 떠올랐네
날씬한 몸 빈약해 보이던 젖가슴
소젖으로 아이를 키우는 바깥세상 모르고
빈약한 젖가슴으로 아이엄마 될 혜경이
분계선이 가까우니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언제나 준비가 돼 있다던 혜경이
도상작전 컴퓨터의 가공할 파괴력 대신
선녀의 전설과 도라지꽃밖에 모르는 처녀
일만 미터 상공에서 에어포켓에 걸렸는지
비행기가 갑자기 수직으로 추락하고
혜경이의 얼굴이 덜컥 표지 위에 꽂히네.
「귀로에서」 전문 -1995년 8월

2주라는 시간은 꿈결처럼 흘러가 버리고,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땅을 두고서 떠나야하는 시인의 마음은 매우
착잡했을 것입니다. 북경에서 갈아탄 캐나다 비행기, 고려항공에는 없던 것들의 품목만 봐도 북한이 얼마나
고루하며 폐쇄적인지를 가늠하겠네요.
금강산 관광안내원의 ‘빈약한 젖가슴’만 보아도 궁핍의 정도를 헤아리겠고요.
그러기에 더욱 아프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시인은 “도상작전 컴퓨터의 가공할 파괴력 대신/
선녀와 전설과 도라지꽃밖에 모르는 처녀” 라는 표현으로 통일의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백여 편이 넘는 시를 한꺼번에 읽는 일은 제법 벅찬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묵 선생님의 시세계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2015년까지 발표된 시들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한편 놀라웠습니다.
삼십 년 가까운 등단시기, 칠십 중반을 훌쩍 넘겼음에도 이처럼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다니요.
독자를 끌어 들이는 진한 서정과 주제를 띄워 올리는 힘이 대단했습니다.
작품마다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감동이었고요. 선생님!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더욱 건강하세요.

<약력>
목포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
1969년 캐나다로 이주.
1988년 김광규 추천으로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 ‘절구를 생각하며’ 외 9편으로 등단.
1993년 시집 『링컨 生家에서』출간.
1996년 시집『백두산 들쭉밭에서』 출간.
2008년 여행 칼럼집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유럽여행 ‘런던에서 이스탄불까지, 지知적 로드맵’』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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