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홍 시집 ‘잉카 여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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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홍 시집 ‘잉카 여자’를 읽고

이상묵 0 1442
최연홍 시집 ‘잉카 여자’를 읽고
                                                                                                                    이상묵(시인)

시집 ‘잉카 여자’에는 ‘잉카 여자’가 나온다. 여행시의 소재로는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시인들 역시 얼른 착안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보는 사람(見者)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중에서도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다.
최연홍 시인은 ‘잉카 여자’를 ‘내 사촌 같은 여자’라고 적고 있으니 더 말해 뭘 하겠나.

부분을 옮겨본다. “(전략)/ 선한 눈빛/ 햇살에 그을린 적동색 피부/ 내 사촌 같은 여자/
그녀가 키우는 알파카 털로 짠 스웨터 하나를 팔기 위해/ 하루를 거리에서 보내는 잉카 여자/
그녀는 안데스 산맥을 넘는 짐 실은 야마처럼/ 오늘도 쿠스코 거리를 지나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
시 ‘잉카 여자’ 중에서 마지막 시행은 아주 천천히 그러니까 음미의 속도로 읽을 필요가 있다.

흔히 거리의 행인들 중 천천히 걷는 사람은 얼른 눈에 띄지 않는 연유다. 천천히 걷는 사람을 천천히 관찰하는
시인의 자세가 그래서 더 유별나다. 주마간산의 패키지여행이 유행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잉카 여자는 점포가 따로 없다. 몸이 바로 점포인 것이다. 행여나 고객이 나타날까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그녀에게 고객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시인은 얼른 자리를 뜨지 못했나 보다.
사촌 여자라고 생각 되니 순간이나마 더 걱정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야마다. 짐을 얹고 안데스 산맥을 넘는 강인한 동물이다. 오늘도 쿠스코 거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고 있지만 내일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갈 것이 확실 한 존재다.
그래서 시인은 연민을 하다가도 지속 가능한 희망을 발견한다. 마지막 시행이 암반처럼 든든한 건 그래서다.

실린 시들을 보면 장대한 건축물이나 이름난 유적 앞에서 쓴 시는 눈에 안 띈다. 그런 건 승자들의 역사다.
거기서 비켜난 거리의 삶들에 시인은 외려 포커스를 맞춘다. 패자들의 삶은 당연히 피폐한 그것이지만
시인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 한 예가 시 ‘갈대밭-티티카카 호수에서’이다.

“불쌍한 고원지대의 부족들은
 침략자에 밀려
 호수 속으로 사라져 갔는데
 그들은 살아 있었고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을 살려낸 것은 갈대
 갈대로 섬을 만들고
 갈대로 집을 만들고
 물 위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갈대밭에서
 물병아리를 키우고
 기니 픽을 키워
 구워 먹으며
 살아왔다
 잉카제국이 무너지고
 스페인 제국이 무너졌어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갈대밭 제국을 만들어 살고 있다
 갈대가 영원한 제국을 만들어 주고
 있다“

얼핏 물의 도시 베니스를 생각나게 하는 시다. 베니스 역시 침략자에 밀려 도망간 난민들이 건설했다.
그게 5세기경이었고 침략자는 게르만족과 아시아 쪽의 훈족이었다. 침략자들의 유적을 찾아볼 수 없는 건
베니스도 마찬가지 다.
개펄에 나무말뚝을 박고 도시를 건설한 난민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무대의 주인공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승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누구냐가 중요한 건 아닐까.
 
강한 것은 부러지지만 약한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시는 드러낸다. 즉 갈대의 메타포가 그것이다.
칼과 총의 잉카제국 이나 스페인 제국은 무너졌지만 갈대는 살아 있는 제국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제국이 아닐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이 시집은 남아메리카의 토착정서에 오래 머문다. 위의 두 시들처럼 잉카의 후예들도 나오고 아마존 강과
나스카 평원도 나온다. 남아메리카는 설명을 거부하는 문명의 흔적들이 많다. 마추픽추 산성도 그렇고
나스카 평원의 지상화(地上畵)도 그렇다. 세계의 불가사의들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들이다.

시 ‘나스카 그림’은 외계인들이 사막에 그렸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역시 불가사의다. 비행기에서 봐야
벌새며 원숭이며 거대한 형상이 나타난다.
정답이 나오지 않는 암호를 풀려고 사람들은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시인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시를 잠깐 살피기로 하자.

“(전략) 선으로만 그린 그림/ 점과 점으로 이어진 선이/ 만든 상형문자/ 산은 누구의 조각인가/
산이 만들어내는 그림/ 산맥이 만들어내는 조각/ 사막에 내리는 비와 찬바람이 만들어내는 조각품/
산맥이 하늘에 그려놓은 그림/ 그 그림만큼 좋은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나스카 문명은/ 현대인에게 가르치고 있다/ 800미터 상공에서/ 경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다본/
지상의 그림/ 신비의 상형문자/ 신이 만든 산/ 아니야, 산이 만든 신/ 신비”

나스카 지상화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그렸겠지만 그 신비에만 눈을 팔 게 아니라고 시인은 짚어낸다.
그 보다 더 큰 신비의 그림, 즉 신이 그린 밑그림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이 지상에 그린 산과 산맥의 풍경화는 얼마나 오묘한가.
그런 접근을 통해 나스카 그림을 대비함으로써 그 신비가 더 돋을새김 되는 게 이 시의 미덕이 아닐까.

여행이 동네축구처럼 보편화된 세상이 됐다. 어디 가서 뭘 보고 어느 거리 어느 식당에서 뭘 사 먹느냐는
여행안내서도 넘쳐난다. 하지만 여행은 이동 하면서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닐 터다.
정지해서 순간의 생각에 잠기는 것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될 터이다. 여행시의 덕목이 바로 거기 있지 않을까.
최연홍은 여행시집 ‘잉카 여자’를 통해 ‘여행’이 아닌 ‘인생’의 여정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이 시집이 남기는 것은 잔잔한 그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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