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최)의 첫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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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최)의 첫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를 읽고

이상묵 0 1401
서림(최)의 첫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를 읽고

                                                                                                        이상묵(캐나다 거주 시인)
 
으레 첫 시집의 출처는 고향이다. 최서림의 첫 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 도 예외는 아니다.
왜 굳이 고향인가. 무엇보다 원초적 체험 때문이 아닐까.
태어나서 눈에 처음 인식되는 색깔의 경이, 귀에 처음 울리는 소리의 떨림은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DNA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첫사랑의 화살이다. 그 화살의 전율도 거의 고향에서 발생한다.
 최서림의 고향인 경북 청도군엔 신라 초기 이서국(伊西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단다. 삼국사기에 겨우
한 두 줄의 기록뿐이지만 부지기수의 고인돌도 남아 있고 엉뚱한 곳에서 청동비파검이 발굴되기도 한다.
최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伊西國에서였다. 1993년 ‘현대시’ 잡지에서 난데없는 국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그의 시가 발표되고 그로 인해 서림의 이름조차 물망초가 되고 만 것이다.
 
첫시집은 열정의 시행착오를 통과한다. 아내도 나오지만 첫사랑도 나온다.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감히
선포하는 그의 첫사랑은 누구인가.

그 여자

숫기 없어 놓쳐버렸다

가을 하늘 아래 곧장 붉어지는 홍옥,
엉겅퀴 같은 가난한
伊西國 수렵군의 딸임에 틀림없다
꽃자주색 T 입고 그냥 떠난 그 여자,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막무가내
친정에라도 불쑥 찾아들고 싶게 하는 그 여자,
이서국 돌칼로 헤집고 들어오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늙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자,
내 마음에 잠자는 돌칼이 노루피를 부르면
무작정 고향 버스를 타게 한다
그녀 살던 마을, 이서국 도읍지 백곡 지날 때면
가을 들판 위로 둥둥둥 이서국 시퍼런 북소리,
肋骨 굽은 골짜기마다
돌칼 가는 소리

잠시 노루피에 취하다 보니 전문을 다 옮기고 말았다. 만약에 하나 그 여자가 고향이나 이서국 역사를 빗대는
메타포라면 이 오독을 어찌 사면 받을까. 하지만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으니 아직도 돌칼을 가는
그의 첫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용암이 끓고 있으니 시도 쓰고 고향의 원초적 역사도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에 확신이 간다.

시집의 소재들은 이서국의 유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머니도 나오고 소싸움 씨름판도 나온다.
지신밟기도 나오고 뻐꾸기 소리가 울리는 환상의 대청마루는 공유가 절로 되는 정경이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처럼 이서국에 대한 그의 탐구와 연모는 남다르다. 오죽했으면 예비군 훈련시키는
조교가 갈기는 오줌발이 이서국 산천을 그린다고 썼을까. 잠시 그 대목을 살피기로 하자.

伊西國으로 들어가다 1
-靑銅劍

청도읍 뒤뜰 예비군 훈련장
교육 나온 조교, 땡볕에 약간 지친 듯
담배 물고 이서국 남방식 고인돌 밑에다
길게 오줌 갈길 때, 오줌은 땅 밑에서
꿈틀거리는 이서국 산과 개천을 그린다 (하략)

오줌 갈기는 행위가 서림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왜일까. 그 하찮은 일상의 포착이 사라진 국가에 대한
애정의 단서는 아닐까. 이서국은 홀연 사라졌지만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경구와 혹시 연루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의 어떤 몸짓도 역사의 흐름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되리라. 해서 그의 사랑은 시효를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당대를 사랑하는 사람은 고대를 사랑하고 미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그 때문에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 페북에서 공개한 것이지만 촛불집회의 소망에 대해
그는 여러 편의 시를 올림으로써 시대와 동행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서국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그린 다른 시 한 편을 엿보기로 하자.

청도장
- 이서국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입구
1.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이 세상이 이서국의 안이고 밖이다.
2.
이천 년 정도 사람 밥줄 이어온 장터, 어귀
오동나무 밑 생선 파는 늙은 과부 장시, 대대로
장터 살아온 어머니 닮아 새까맣고 기름기 바딘 얼굴에
자잘한 욕정과 좌절이 검버섯으로 박혀,
인생살이 모든 게 그저 목쉬는 흥정으로,
그에게 세상은 절인 고등어다. (후략)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왜 거울이라는 걸까. 이 세상이 이서국의 안이고 밖이라는 걸까.
서림에게 물어봐야 정답이 나오겠지만 오독하자면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꼭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풍파를 몸으로 견디며 생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서국의 존재와는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 이서국은 영생한다는
어법은 아닐까.
작년 봄 페북에 입문한 후 여러 시인들을 만났다. 대면조사를 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SNS에서 의식의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서림이 참여한 것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가을 언저리다.
이름에만 머물던 그가 손을 내민 건 의외였다. 20년도 넘은 첫시집을 구해서 캐나다까지 보내준 배려는
황감하다. 이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광화문광장에 나간 것일까.

아까도 말했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게 된다는 가설을 되뇔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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