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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자 제5시집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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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자 제5시집 <화려한 외출>
글쓴이 : 김길자 날짜 : 2019-01-23 (수) 05:37 조회 : 481


책소개
김길자 시집 [화려한 외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김길자 시집 해설

자연・우주・생명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김길자 시인의 이번 시집은 2012년 『장미예식장』(시안) 이후 무려 6년만이다. 그 6년 이라는 시간 속에는 “병원에 입원한 신세 되어보니/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기적이란 걸”「기적이라는 것」 알게 되었고, “가파른 산 오르다/누워있는 고사목을 보며/삶의 고난과 역경이 무엇인지/생의 최후를 교훈으로”「산행」 보기도 했음이 녹아들어 있다. 시는, 특히 서정시는 이처럼 세상과의 만남, 그리고 내 안의 내 자신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이 만남을 통해 우주 속에서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고, 함께 숨 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임을 김길자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특히 꽃에 관한, 나무에 관한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만큼 몸소 수많은 식물을 키우고, 자연 속으로 찾아 나서고, 그리고 몸소 “스티로폼 농장을 여러 개 가꾸는”「스티로폼 텃밭」 시인이다. 특히 김길자 시인의 작품들이 단순하게 자연에 침잠하지 않고 우주적 상호협동 정신과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적인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시집에서 꽃과 나무와 자연이 시인에게 말하는 언어에 귀 기울이며 응답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언어에 응답할 때만 말한다. 언어가 말하는 것이다.”라고 깨우쳐 준 하이데거의 「언어」(1950)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포늪에서」 연작시 7편은 김길자 시인의 시세계와 시정신을 살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날이 채 밝지 않은 늪
여기저기서
고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포늪을 포근히 에워싼 짙은 물안개
먼동이 트는 것 보고
휘장이 걷히듯 그 빛 온몸에 걸치며
바람의 운율에 맞춰 우아하게 군무하는데
나도 산수화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수면 위로 고개 내밀며 반기는
부레옥잠 수련 자라풀 마름 어리연꽃이
늪에 가득한데
부딪치듯 부딪치지 않는 삶이
참으로 심오하고
 
자연의 순리가 존재하고
순종의 향기가 가득한
신비스러운 늪의 세계에 빠져든다

-「우포늪2 -새벽안개」 전문 
 
우포늪은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늪으로 1933년에 천연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3월 2일 국제협약인 람사협약에 등록된 보호습지이다. 우포늪은 논병아리, 백로, 왜가리, 고니 등 조류와 가시연꽃, 어리연꽃, 부레옥잠, 수련, 창포, 마름 등 총 342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생태계이다. 김길자 시인은 이곳에서 거룻배, 새벽안개, 비단햇살, 생이가래, 가시연꽃, 백로, 꼬마 부들 등을 소재로 작품을 썼다. 그중 인용 시는 두 번째 작품으로 우포늪의 새벽 안개와 시인이 자연 속에 동화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카메라 앵글을 서서히 돌리듯 “날이 채 밝지 않은 늪”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부터 “먼동이 트는” 시간적 배경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마지막 연에서 “신비스런 늪”의 공간적 배경으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여기저기서/고물거리는 소리”를 듣는 청각적 이미지에서 “수면 위로 고개 내밀어 반기는/부레옥잠 수련 자라풀 마름 어리연꽃이/ 늪에 가득한” 풍경을 보는 시각적 이미지를 구사한다. 이 작품이 특히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는 것은 “부딪치듯 부딪치지 않는 삶이/참으로 심오하고//자연의 순리가 존재하고/순종의 향기가 가득한/신비스러운 늪의 세계에 빠져”드는 환상적인 자각과 감수성이 세계와의 화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세계와의 화해는 연작시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드러나는데, 즉 “나는 어느새/우포늪의 가족이 되어/내 병이 치유되고 있었다”(「우포늪3 -비단햇살」)라거나, “단 한 번이라도 가시연꽃처럼/아름다움을 가져 본 적도 없고/참혹한 기억도 없었는데/내가 가시연꽃인 양/가슴이 자꾸 아려온다”(「우포늪5 -가시연꽃」)가 그렇거니와 또한 “늪은 순응만이 존재하는 세상/태초의 삶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곳/우포늪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우포늪7 -꼬마부들」), “물안개 가득 태우고/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읊으며/노를 저어볼거나”(「우포늪1 -거룻배」) 등이 그렇다.

  특히 우포늪 연작시의 시간적 배경인 “날이 채 밝지 않은” 어슴프레한 새벽의 이미지는 “희뿌옇게 늪을 덮고 있던 원시의 어둠 속에서/나무와 수초가 서서히 돋보이더니/여명이 늪을 깨우는”(「우포늪7 -꼬마 부들」) “새벽길에 만난 물안개와 산바람/안개비에 촉촉이 젖은”(「우포늪3 -비단햇살」)시인이 ‘몽상에 더 잘 어울리는 어둑어둑한 길에 이끌리며’(빅토르 위고, 「명상」 4장 14절) “새벽 물안개와 운무가 장관인 우포늪을 끼고/조심스럽게 걷는”(「우포늪4 -생이가래」) 모습만 상상해도 아닌 게 아니라 참 몽환적이다. 이러한 몽환적인 모습은 다음 시에서도 볼 수 있다.

내소사에 가려면

송진 냄새가 곡진히 안내하는
전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그 숲길을 걷다보면
지친 영혼 어루만지는 바람의 향연과
오목눈이 촉새든 온갖 산새 소리에
 
나는 덩달아 숲의 피노키오가 되어
숲속 나라를 헤엄치고
바람의 이야기로 숲을 채워간다
 
흘러가는 시간의 향기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이 금화살처럼 쏟아진다

-「내소사 가는 길」 전문
 
  내소사라는 절집에 가기 위해서는 “송진 냄새가 곡진히 안내하는/전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니 이 얼마나 몽환적인가. 그것도 전나무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액체인 “송진 냄새”가 “곡진히 안내”하는 길을 걷는다는 건 참으로 꿈길 같지 않는가. ‘곡진함’이란 마음과 정성이 지극함이며, 자세하고 간곡함이니 숲속의 전나무도 그냥 허투루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전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감에 젖는 것인지를, 시인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음이라. “시는 끝없는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이러한 순간을 건져내어 시간을 초월한 형식 안에 가둠으로써 그 순간을 기록하여 보존한 예술작품”(존 홀 휠록, 「시에 관한 몇 가지 단상」)임을 김길자 시인은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리하여 마침내 “흘러가는 시간의 향기/하늘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 가지 사이로/햇살이 금화살처럼 쏟아”지는 환희를 맛보게 된다.

  자연으로부터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환희는 김길자 시인의 특유한 시적 감수성이다. 「새침데기 내숭떠는 명자나무」에서도 “붉은 빛 진하게 꽃 피우는/새침데기 명자나무야/봄의 환희를 네게서/몽땅 느껴볼 일이다/쏟아내는 은은한 향기 맡으며”라고 환희를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입춘」에서는 “복수초도 변산바람꽃도/봄이 오는 길 닦느라 분주하구나/겨우내 두르던/누런 누더기 벗어던지고/뾰쪽한 입 쑥 내밀며/눈부신 햇살을 맞이”하기 위해 곧 다가올 봄을, 또는 “숲이 품어온 나무와 열매들/바람과 햇살이 키운 나뭇잎이/화려한 단풍으로 갈아입고//마지막 황금빛 화려한 축제로/바람결에 맞춰 춤을 추며/차가운 겨울을 준비하는”(「참나무 숲에서」) 가을의 환희를 찬미하고 있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이 맛보는 환희는 시인의 우주적 협동체 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음 작품을 보자.
 

아직은
멈출 수 없는 이 그리움
갈바람에게 맡기며
푸름은 체념해버립니다
 
한창을 살 것 같은 무성한 잎이
삭풍에 몸을 떨며
가지 끝 붙잡았던 손을 놓으려 합니다
 
사랑앓이 할 때는
바람소리에도 슬퍼지고
우주 속 흐르는 유성을 바라보며
눈물도 흘렸지만
 
임종 준비로 밤을 보내는 나뭇잎
햇살 한 줌에도
푸석한 몸에 피가 말라가는
잎새가 순응하는 길은 어디까지일까
 
실바람 한 움큼에도 감사하며
찬 서리 이불삼아 찬 땅에 누워
자연의 품에 돌아가려합니다
 
이 길은 내 순명의 길이기에…

-「잎새의 작별」 전문
 
일반적으로 낙엽에 관한 시들은 많다. 그러나 김길자 시인의 이 시는 단순한 낙엽의 생태나 그에 따른 계절 감각 노래하는 게 아니다. 우선 낙엽을 통한 시인의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데, 즉 “삭풍에 떨며/가지 끝 붙잡았던 손을 놓으려” 한다는 구절이 그렇다. 그냥 바람에 의해 떨어지는 이파리가 아니라 이파리 자신이 “손을 놓으려” 하는 “그리움”과 “푸름”에 대한 체념의 행동으로 묘사되고 있음에서다. “사랑앓이 할 때는/바람소리에도 슬퍼지”는 이파리, “우주 속 흐르는 유성을 바라보며/눈물도 흘렸”던 이파리의 존재의식은 곧 우주적 동일체로서의 인식이 아니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노자는 우주의 본원을 현덕玄德이라고 했다. 현덕이란 크게 세 가지, 즉 그윽하게 내면에 깃들어 있어 드러나지 않는 덕과 만물을 만들고 기르는 한없이 넓고 큰 대자연의 덕, 그리고 천지의 깊고 묘한 이치를 의미한다. 노자는 구체적인 사물의 덕성을 하늘의 덕, 땅의 덕, 사람의 덕 등으로 불렀지만 이러한 덕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모두 동일한 개념으로 보았다. 이러한 노자의 우주의 본원을 이해하는 몫은 시인의 몫이라서 이파리가 이제 나무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작별하려는 때 “실바람 한 움큼에도 감사하며/찬 서리 이불삼아 찬 땅에 누워/자연의 품에 돌아가려” 한다는 것은 우주의 이치에 “순명의 길”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새들이 둥지를 틀고/곤충들의 더부살이도 허락하는/늙은 느티나무”(「행복한 느티나무」)의 행복이라든가, “쥐똥나무 옆 검불더미에/홀로 냉가슴 앓던 민들레가/햇살 한 줄기 붙잡고 하소연”(「착각」)하는 모습, 또는 “찰찰 흐르는 계곡물소리와/숲을 비단처럼 수놓는 휘파람새소리/실바람 살 부딪치는 소리도/참도 잘 어울리는”(「산국의 계절」) 그윽한 숲길의 정경들은 모두 더불어 존재하는 우주적 협동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언덕에 핀 메꽃을 만나
사랑에 빠진 한나절
 
물새들의 낙원이라는 안양천 냇물에서
헤엄치는 철새도 텃새도
사랑에 빠진 듯
나는 날갯짓도 우아하다
 
그리움 따라
푸른 하늘에 흐르던 하얀 뭉게구름이
풍덩 냇물에 빠진 그 풍경 속에
나도 같이 흐른다

-「배추흰나비」 전문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배추흰나비”와 “메꽃”, “안양천 냇물”과 “헤엄치는 철새 텃새”, 그리고 “뭉게구름”과 “냇물”과 “나”는 모두 우주 속에서 잘 어우르는 협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길자 시인의 자연은 모두 우주 안에서 따로따로 살아가지 않는다. 보라. “봄이 먼저 말을 건다/햇살의 간지럼에 깨어난 제비꽃/보랏빛 눈웃음으로 윙크하며/바람과 숨바꼭질 하잔다”(「어느 봄날의 웃음소리」)거나, “풀잎에 앉아 졸던 고추잠자리가/산새들의 맑고 고운 노랫소리/한 가락 움켜쥐고/구절초 꽃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시월의 서정」)거나, “동네 정자에/노랑나비 한 마리가/놀이터에서 놀다 온 어린이랑/조잘 조잘거리며/간식을 나눠 먹”(「우리 동네 정자는」)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건실한 고추가 열릴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잡초를 뽑아준 손길과/뜨거운 햇살과 고마운 바람도 있지만/진딧물 퇴치시키던 무당벌레도/한 몫 했다”(「고추밭에서」)니 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로운 세상인가.

 
제주도가 고향인 소엽풍란이
제주도 닮은 모형 돌과 하나 되어
석부작에 터를 잡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베란다에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절벽에 바짝 달라붙은
하얀 뿌리 끝에서
파도소리 바람소리가 난다
 
하얗디하얀 작은 꽃숭어리 입속에
그윽한 향기 잔뜩 머금은 풍란
그리운 고향 제주도 바닷물을 퍼내며
먼 바다 끝에서 몰고 올 폭풍을
촉수에 물고 있다

-「풍란」 전문
 
우리나라의 남부, 특히 완도, 홍도와 흑산도, 제주도의 바위나 나무에 붙어사는 풍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이 작품에서는 제주도 산 소엽풍란을 소장한 시인이 풍란의 생명성을 노래하고 있다. “베란다에/아침 햇살이 들어오면/절벽에 바짝 달라붙은/하얀 뿌리 끝에서/파도소리 바람소리가 난다”고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공감각적 이미지로 풍란의 자태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절벽”은 시인의 집 배란다로 옮겨 와 석부작에 붙어 있는 상태를 원래의 바위 절벽의 개념으로 환치시켰으며, “파도소리 바람소리” 또한 제주도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놓음으로써 배란다는 곧 우주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생명의 자리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배란다에 자리한 풍란이 “그리운 고향 제주도 바닷물을 퍼내며/먼 바다 끝에서 몰고 올 폭풍을/ 촉수에 물고 있다”는 상상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촉수에 물고 있는 실체는 “그윽한 향기”일 터. 이 향기는 「나도 풍란 사설」에서 “침묵의 바위에 아찔하게 매달려/먼 바닷바람을 향하여/시의 절창 한 소절/목청껏 읊어대”는 양상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김길자 시인은 야생화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그만큼 시적 대상도 자연히 꽃들이 많고 꽃마다의 생김생김과 특성과 삶을 한 치도 소홀함이 없이 관찰하고 보살피며 한 식구처럼 살아가는 속에 시로 재창조되고 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단순히 꽃의 모습만 서술하지 않고 꽃마다에서 생명의 탄생과 희망을 본다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안다.

폭설이 쓸고 간
겨울 끝자락에 대지를 뚫고 나온
너를 만나면 깊은 감동을 받는다
 
꽁꽁 얼어붙은
잔설 한 움큼 입김으로 녹여가며
노란 꽃 입술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철같이 힘이 솟아나는 꽃
웃으며 봄맞이 할 수 있음은
살얼음 속에서도 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네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막이 되어주는 낙엽과
틈 날 때마다
군불 지펴주는 햇살이 있고
밤마다
뜬눈으로 너를 지켜주는 별 가족들과
뒤뜰 화단으로 입양해준
가슴 따뜻한 주인이 있어
복수초는 언제나 행복하단다

-「복수초 꽃」 전문

복수초를 중국에서는 ‘눈 속에 피는 연꽃(雪蓮花)’이라고 한다. 복수초는 “잔설 한 움큼 입김으로 녹여가며” 피어나기에 생명력이 강하고 희망을 상징하는 꽃이다. 시인은 복수초를 “연약해 보이지만 강철같이 힘이 솟아나는 꽃”, “살얼음 속에서도 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꽃으로 호명하면서 “너를 만나면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나아가 복수초 한 송이가 피어나기까지 “바람막이 되어주는 낙엽”, “군불 지펴주는 햇살”, “뜬눈으로 지켜주는 별 가족”, 그리고 “가슴 따뜻한 주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우주적 섭리였음을 성찰한다. 바로 여기에 김길자 시인의 시적 성취와 꽃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다. 바닷가에 핀 해국을 노래한 「환희로 피는 꽃」에서도 “청순가련하고 온순한 해국이지만/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하늘바다를 향해 핀/10월의 바다를 심장에 품었다”고 했으니 꽃 한 송이 피어난 그 자체가 곧 환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선화가 피어난 것도 시인은 “죽음도 이겨내듯/시리도록 차가운 세상/삭막한 도시인들의 가슴에/꽃등을 켜”(「수선화의 봄」)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렇다. 김길자 시인처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엘레지꽃」에서처럼 “칼바람에 시달려/발과 손끝 시리고/고난과 역경 견디지 못했다면/나의 봄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생명을 품은 희망의 시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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