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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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

임백령 0 1114
임백령 시집 『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
―남북대립, 남남갈등의 이데올로기 독초를 뽑아내려는 간절한 노래들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사나흘 앞둔 날, 공중의 아카시아 향이 침향으로 갈앉고 낙하한 오동꽃 향기가 떠올라 우리의 깊은 상처를 가시로 찔러 대는 오월, 『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임백령 시인, 건지시인선04, 전북대출판문화원)라는 긴 제목의 시집이 인쇄 완료되었다.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의 많은 역사적 문제를 낳았고 민족 내부 갈등의 원인이랄 수 있는 사상과 이념의 대립을 다룬 시집이다. 그런데 이 시집은 남한과 북한, 남한 내의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중립적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북한 동족을 포용하려는 시각과 함께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책이나 집단의 태도를 신랄하게 질타한다. 그와 함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한 축을 이루는 동맹국 미국도 비판의 대상에 올리고 있다. 시인은 달라지지 않은 한반도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며 해묵은 사상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무모한 집착과 관성에 맞서 거칠게 목소리를 높인다.

하얀 꽃 속 아그배 동글동글 맺히고
애기똥풀 노란 꽃물 배어날 즈음

메아리로 새끼 소리 품는 것인지
뻐꾸기 날아와 되우 울다 달을 토했다.

젖무덤 한 번 물리지 못하고
총 맞아 죽은 여자의 사연 불어나

희부옇게 퍼졌다 쇠어 가는 삐비꽃
봉분 아래 핏방울이 잦아들곤 하였다.  -  「오월(五月)」 전문

 1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의 아픔을 담고 있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 갈등 상황을 폭력 자행의 토양으로 삼고 무자비하게 살상을 집행했던 위정자와 하수인, 국가기관들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던지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정서 표출은 그들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의례를 시인 나름대로 치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담사 극락보전 편액은 쓴 사람의 손에서
쉼 없이 흘러나와 지워지지 않는 죄악의 피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어느 위인이
쫓겨가 귀양살이 때 새긴 저주의 필적

그 안에 계신 부처님 얼마나 딱하실까
한 중생 대원을 눈감지 못하는 자비심에

원혼들 가야 할 곳마저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나는 아수라의 악귀가 되리

극락에 가 있을지도 모를 그를 끌어내려
씻지 못할 악업을 지옥의 열탕에 처박아 넣으리  - 「극락보전(極樂寶殿)」 전문

천구백팔십년 오월 이십삼일 광주 주남 마을
삼십팔 년 전 그 공포 그 총성 그 출혈 그 냄새
때죽나무 꽃향기에 취해 있는 나를 찔러 오네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살점과 피 피 범벅되네
뻐꾸기 소리 듣다 산너머 고막이 찢겨 오네
길을 걷다 도망치네 몸이 주남 마을로 뛰어가네  - 「오월이십삼일」 부분 

서울역에서 남영역으로 가다 보면
전력 공급 방식 변경으로 전철 안 불이 꺼지지
깜깜해지는 건 아니지만 흔들리는 몸
눈을 감아도 보이데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들리데 지하철 철로에 깔리는 비명 소리
아픈 역사의 정거장을 기억해야 한다는 듯
우리 몸이 감전당하는 고문의 음화  - 「남영」 전문

 2부는 남북분단을 고수하려는 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어조, 동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관성적 태도에 대한 반성, 분단국가 동족으로서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시선 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보수우파들로부터 친북좌파라고 비난 받을 여지도 있겠지만 남북대립과 분단 현실의 이념 갈등의 적대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들을 향한 의도된 저항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서 조금도 움직이지 마라
너희들을 가두니 형벌은 영원할 것이다.

탱자 가시 울타리 같은 북위 38도
양쪽으로 갈려서 서로 내통하지 말아라

슬퍼도 울지 말아라 아파도
상대의 귀에 소리가 들리게 하면

안 된다. 절대로, 그 안에 갇힌 지가
몇 년이 흘렀는지 세월 같은 걸 저울질해서는  - 「위리안치(圍離安置)」 전문

 선운사 꽃무릇을 보며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엇갈림의 관계를 남쪽과 북쪽의 냉정과 열정의 차이로 부각하여 사상과 이념의 테두리 속에 갇혀 동족의 모습을 왜곡하여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붉은 꽃술에서 저들의 사상을 읽고
이 땅에 번져 나갈 적화를 걱정하며 경계하고 놀라지만
어찌 그것이 계산된 몸짓이겠는가 저절로 밀어내는 것
반쪽의 순수를 제 몸에 기둥으로 세우지 못하는 잎사귀들
꽃 피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절름발이 소경의 눈들아
- 「상사화, 꽃무릇, 꽃술」 부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북한 주민 33만여 명이 굶어 죽은 시기 우리의 냉담함을 짚어 낸 작품도 있는데, 또다시 어려워진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접하며 우리의 처신이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 속에서 어떠해야 하는가를 곱씹게 한다.

평안남도 어느 동산 언덕
너무 말라 십 년쯤은 더 어려 보이는 처녀

“토끼풀 매서 뭐하니? 토끼 줄라고?”
“제가 먹으려고요.”

아아, 조선 시대 여인네였다면
수틀에 토끼풀도 수놓았을 것을

인근 옥수수밭에서 결국 쓰러졌다는 동족
그 자리처럼 여기저기 무성한 토끼풀 밭

그 속에서 네잎클로버 얼굴 내밀고
동글고 하얀 손목 꽃시계 부풀어오르는데
 
왜 우리는 넘쳐나는 남쪽의 양식 한 톨
보내 주지 못했는가? 그 죽음 통곡하지 못했는가?

지금도 달나라 토끼가 먹는 풀밭에 가 있는지
그녀가 흘린 밥알 하나 땅으로 별똥별 떨어진다.  - 「꽃제비」 전문

 3부는 시인의 주관적인 시각이 깔릴 수도 있겠으나 강대국이 남북분단의 현실을 개선하고 동족끼리 화합하고 통일로 옮겨가도록 기여하는 적극적인 역할보다 세계지배 욕구를 강화해 나가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남한의 맹방인 미국과 지도자, 무비판적인 우리 정치인에 대한 생각들을 모았다. 외세, 제국주의 등의 시어들은 아직도 분단과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 상황을 방관하는 초강대국에 대한 질책이므로 반미(反美)라는 표현보다 비미(批美)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해설도 추천사도 안 실은 이 시집 뒷 표지를 장식한 「악수」.

아버지 방 윗목 놓여 가난한 나라 어린아이 눈에 들던 것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 포대 자루에 그려진 두 손
굳은 악수가 이제는 매듭으로 떠오른다.
결코 놓지 않고 잡아당겨 하나의 줄 되어버린 동맹

빛바래고 아궁이에 버려져 포대 그림 불탔겠지만
뼈보다도 단단히 결합하여 떨어질 줄 모르는 집착
태어나기 전부터 피 흘리며 변하지 않는 혈맹 관계를
죽을 때까지 바라보는 목격자가 있었다.  - 「악수」 전문

 「역사 채널 e」라는 작품은 TV 제목을 차용한 듯한데, 해마다 되풀이하는 십여 가지 한미 연합 훈련을 앞에서 나열하고 남한 북한 중국 미국 등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담담하게 고찰한 뒤 맨 마지막에서 ‘통일을 위해 남북이 선택해야 할 길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뉴스에 끊이지 않고 나오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인터넷에서 되는 대로 그러모아 보았다.

 키 리졸브 훈련 KR(Key Resolve)
 한미 폴 이글 독수리 연합 훈련 FE(Foal Eagle)
 폴이글/키리졸브 훈련(2017.03.01~2017.04.30)
  (대규모 미 전시증원훈련(RSOI),
  2017년 한미 연합지속지원훈련(CDEx·Combined Distribution Exercise),
  대잠·대함·대공전, 대특수전부대작전(MCSOF), 해양차단작전, 대함·대공 실사격
 훈련 등의 한미연합해상훈련,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의 선제타격 및 정밀타격 훈련,
  김정은 북한 최고지도부 제거 정권 붕괴 '참수작전' 훈련,
  성주 사드 체계 활용 북한 미사일 요격 훈련)
 한국판 '레드 플래그' 한미 공군 연합 맥스 썬더 훈련 MAX THUNDER(2017.04.14~04.28)
 한미 통합 화력 격멸 훈련(2017.04.26)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 UFG, Ulchi-Freedom Guardian(2017.08.21~08.24)
 2년 주기 격년제 실시 한미 연합 상륙 쌍용 훈련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억제와 대응을 위한 한미 확장억제수단 운용 연습 TTX(Table Top Exercise)
 북한의 WMD 시설 사전 탐지 파괴 목적 한미 연합 워리어 스트라이크 훈련(Warrior Strike IX)
 한·미 해병대연합훈련(KMEP)
 한미해병대군수단 연합 공중송달훈련(2017.10.12~10.16)
 한미 해군 고강도 연합훈련(2017.10.16~10.20)
  (항모호송작전, 방공전, 대잠전, 미사일경보훈련(Link-Ex), 선단호송, 해양차단작    전, 대함·대공 함포 실사격 훈련 등 항모강습단 훈련과 연합 대특수전부대 작전훈    련 대특수전부대 훈련 참가 핵 추진 잠수함에는 북한 수뇌부 겨냥 ‘참수작전’ 요    원들인 미 특수전 작전 전담 부대원들 탑승)
 미국 항모와 해군 함정 동원 한미 해군 연합 훈련(2017.11.12)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훈련(2017.12.04~12.08) 스텔스기로만 24대 참여
 한미 전투비행대대 전술 연합작전 능력 향상 쌍매훈련(Buddy Wing Exercise)

 북한은 말한다. “북침 전쟁 연습이다. 중단하라!”
 우리는 말한다. “방어적 성격의 연례적인 훈련이다.”

 원래 한민족인 남한과 북한은 해방 후 강대국의 진주로
 서로 다른 이념의 분단 상황에서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치른 뒤
 북한은 고립되고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위협적인 미사일을 날리고 핵무기로 무장해버렸다.

 끊임없이 한반도를 들락거리는 미국은
 북한에게는 침략국이고 남한에게는 동맹국이다.

 미국으로부터 온갖 경제 제재를 받는 북한은
 33만여 명이 굶어 죽어가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견디며
 지금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여
 석유도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아 힘겨운 삶을 이어 나간다.

 남한과 미국이 삼팔선을 넘으면
 중국은 군사를 개입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통일을 위해 남북이 선택해야 할 길은?  -  「역사 채널 e」 전문

꼬부기로 불리는 거북이 혹시 이게 상술인 것일까
난다 긴다는 사람도 못할 거라 체념하고

돌아서다 도로 돌아서서
환한 인형 방을 들여다본다.

둥근 얼굴 맞대고 서로 어깨 기대고
그 위를 덮어 온몸으로 막아선 방패막이

옳거니, 그렇게 버텨서 한 마리도 잡혀 나오지 말아라
호시탐탐 노리는 강대국의 저 크레인 집게 손아귀

전후좌우 가늠하고 자로 재다 머리 위에서 급강하
콕 찍어도 찍혀서 공중으로 잡혀 올라갈지라도

미끄러지고 흘러내려 그들의 악력 우습게 만들며
다시금 제자리 잡는 한반도 한민족 끈질긴 힘 보여 주어라
  - 「인형 뽑기 방에서」 부분

 4부는 남한 내의 소모적인 이념 갈등과 사상의 충돌로 인해 소위 친북좌파니 보수우파니 서로 공격의 날을 세우는 현실에서 시인은 두 집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사고로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해법보다 극단적 보수우파를 질타하며 다른 한편에 서는 쪽을 택한다. 시인은 남북이 빠져 있는 질곡의 역사 속 오래된 늪과 수렁을 벗어나 지고지순한 한민족의 절대 목표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이념 갈등에 머물러 동족을 적대시하고 강대국의 보호와 예속에 치우치려는 보수우파의 태도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런 내부 충돌의 과정을 통해 분단 상황에서 형성된 잘못된 집단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의 자체적인 정화와 청산만이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길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개망초 꽃밭 하얗게 물결치고
강냉이수염 패어 나는 날

물러난다는 정치인의 혹세무민하던 죄악
꽁꽁 묶인 유배객 실은 수레는 지나가지 않네

성황당 쌓아 놓고 되돌려 주지 못하는 돌덩이
퉤 침 뱉고 돌아서며 하는 말

먼 바다 끝 파도 칼날 위 너의 적거지
탱자 울타리 두르고 갇혀 살아라

개미 새끼 한 마리 너의 영토
너의 곁으로 가지 않을 것이니

까치가 물고 가 탱자 가시에 떨어뜨리는 것
주적이 누구냐고 물으며 가리키던 너의 손가락이다.

까마귀 날아와 음산하게 되들려 주는 울음소리
좌파들이 나라를 통째로 넘겼다는 너의 목소리다.  - 「유배」 전문

오른손이 저지른 죄악을 왼손으로 잘라버려라
한몸에서도 자아분열을 조장하는 행동

혀로 쉴 새 없이 저를 욕하고 멸시하며
왼손에 저주의 피를 뿌리는 반쪽의 왕국

하나될 나라를 찾기 위해 불문법을 정한다.
죄악의 피 흐르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잘라버려라  - 「불문법」 전문

 ‘학살(虐殺)’, ‘분단(分斷)’, ‘외세(外勢)’, ‘이념(理念)’이라는 대제목에 이어서 ‘사족(蛇足)’을 넣은 곳이 5부이다. 4부까지 사상의 대립과 이념 갈등을 다루고 공세적인 어조여서인지 그것을 조금 완화하기 위해 덧붙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청나라 황제의 조상을 모신 영릉에서 산 만족 칼 하나
중국 공항 검색대에서 빼앗긴 새 나라 건설 혁명의 칼

오늘 문득 휘어진 그 칼날이 하늘에 떠오른다
서슬 푸른 저 칼날을 잡아 내리쳐 모두 베리라

너희들은 목을 조아려라 번개처럼 휘젓는 단칼에
내 주위를 둘러싼 적폐들의 목이 추상낙엽 되리라

그러나 저 칼은 전설로 내려오는 보검이던가
청총마 타고 나타나 칼자루 낚아챌 영웅이 없네

날카로운 칼날은 무뎌지고 불고 녹이 슬어
곡식 이삭 자를 수도 없는 반달칼 지나 둥글어져버리네  - 「칼」 전문

 민감할 수 있는 사상과 이념 문제를 다양하게 노래한 시집 『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를 펴낸 시인의 작품들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한민족의 가장 큰 문제이면서 해결하기 힘든 난제이지만 남북 공동 과제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분단된 반쪽 내부에서부터 찾기 시작해야 하므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해도 백안시하기보다 무엇이 민족 화합과 평화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한지를 따져보고 고집스러운 자신의 시각이 잘못되었다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상 대립과 이념 갈등의 우를 되풀이하는 자기 굴레를 씌우고 스스로 고삐를 끌어당기는 어리석은 집단으로 전락한 채 강대국에 놀아나는 노리개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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