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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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껍질

以柏 0 921
최남균 시집 [마음의 껍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는 이번 시집을 통해 그간의 창작물을 선보인다. 개인의 삶 속에서 건져올린 시어에는 시인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때론 감성적으로, 때론 날카롭게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처지나가는 잔상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비꽃

언제였던가, 마음이 공허하여
대상 없는 그리움으로 서러웠던 적

그리움은 기다림 잉태하고
기다림 끝에서 취산화서로 번지던 눈물이여
뚝뚝 떨어지는
저 허공에 피어나는 꽃이여
당신이 스러진 자국마다
긴긴 여름날 꾹꾹 누르며
설움 복받쳤던 적

언제였던가, 당신 향한 길목이 막혀
숨죽여 기다리며 서러웠던 적

간절한 궁핍이 꽃으로 피어나듯
성긴 눈물이 뚝뚝 떨어질 무렵
내 가슴에 꽃이었던 사람아
오랜 가뭄처럼 절절했던 첫사랑아 
 
언제였던가, 당신은 지고
청춘의 무더기비가 열렬했던 적


방짜

처음 나의 모습은 평면이었다
누구나 무엇이든 올려놓을 수는 있어도
멋대로 무엇이든 담을 수 없는
나의 태생은 낮은 산과 얕은 냇물만 보고자란
비루한 평면이었다.

윤기 있던 계절에는
만물을 포옹하는 거울처럼
후미진 도시의 자화상을 조명하기도 하였으나
빈곤한 자의 괴춤이 자꾸만 흘러내려
떠나는 첫사랑 속절없이 보내야 했다.

사랑을 담지 못하는
도시도 차가운 평면이었다
첫발 떼는 순간부터 뭇매질에 정신없이 살다 보면
물레의 유기처럼 다른 모양으로 변해서
담지 말아야 할 것조차 담고 살았다.

가정 이루고
처자식 품고 살면서
세월과 경험이 늘려준 만큼만 담을 수 있다는
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아직도 마음만은 평면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껍질

살다 보면
연활한 생활의 껍질이 필요하지
거북이등보다 견고한 마음이 있어야 견디어내는
힘겨운 날도 있다.

한 꺼풀 벗는 다는 것은
아픔을 자초하기 마련이지만
그 아픔 지지고 볶다보면 생살 굳는 날도 있어
꿈꾸는 자는 벗는다.

하물며
생명 한 꺼풀 벗는 다는 것은
산 사람에 대한 허물을 덮은 일이지만
비움으로써 가벼워진 나락에 자신을 버리는 이도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정직한 내 속살을 드러내고 산다는 것은
양파 속이나
호도 속이나
껍질은 있겠으나
마음의 껍질을 벗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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