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동행(김은식金銀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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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소개

달빛 동행(김은식金銀植)

김은식 0 1265
시인약력

경북 안동 출생
현, 대구 거주
2012년 9월 계간 문장21 가을호 시 부문 등단
2012년10월 대한문인협회 주최 전국시인대회 작품상
2012년11월 동농 이해조 문학상 시부문 입선
2019년 현재 종합문예지 계간 문장21 시부문 활동 중
휴대전화:010-2676-7285/E-mail:kes9439823@daum.net


시인의 말

시는 마음의 노래.
마음의 샘을 자극하면 아름답고 투명한 샘물이 넘쳐흐른
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샘은 지극히 인간적인 발로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다.
아름다운 생각에서 아름다운 시가 탄생한다.
아름다움이란 무한한 잠재적 언어, 여러 형태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그 아름다움을 통해 참된 것을 구가하는 데서 생
겨나는 공감.
시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힘에서 그 삶이 지탱되고, 방금
태어난 영혼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무저항적 힘을 갖게 한다.
우리는 고귀한 영혼과 같은 시의 탄생을 목마르게 사색해야
한다. 거짓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一草一木이 아
름답다. 서로가 공감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시.
그 시를 보는 우리는 행복하다.
2019년 4월


차례

1부 봄의 기상起床
2부 눈물바가지 사랑별
3부 시간의 산장山莊에서
4부 촛불을 켜면
5부 둥지를 품다


 해설 

      < 시간과 존재 그리고 진실의 얼굴그리기 >                최철훈  (시인, 문장21 발행인)

  한 권의 시집에서 만날 수 있는 시인의 표정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이 창조하는 시속에 녹아 있는 정신 질감의 의미역意味域이 유채색이냐 무채색이냐에 따라 많은 사람의 가슴에 살아 꿈틀거리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특히 드러내고 싶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감동의 진폭이 사뭇 달라질 수 있다. 김은식 시인은 2012년<문장 21>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으로 세상에 소개된 분이다. 김은식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를 자신의 문학으로 담아내고 있다.
시 전반에 地水火風(땅, 물, 불, 공기)의 네 범주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하여 상상의 힘을 발휘, 시에 접목시키고 있다.
  김은식 시인의 시 130여 편을 5부로 나누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참 따뜻한 시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인의 시속에 녹아 출렁이는 삶의 모습은 담백하면서 희망찬 모습이었다. 혹자는 ‘시를 정신의 그림’이라고 말을 한다. 김은식 시인의 정신의 그림 속에 담긴 건강함이 건져 올린 시편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머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봄은 작은 풀씨를 깨우기 위해/ 간밤에 비를 내렸다// 생명인 양 묻어 두면 싹을 틔우는 봄/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을 틔우려 하네/ 담장 옆에/ 번지듯 돋아나는 새싹들// 언 땅을 녹이고/ 근심의 돌을 밀치고/ 아침 햇살 앞에 기지개를 켠다// 봄은 일제히 돋아나, 번지는/ 희망, 그리움, 기다림의 씨앗들로// 우리 가슴에 묻어 둔/ 해묵은 풀씨의 이름들을 깨우려 하네.
                                                    - <봄의 기상(起床)> 전문

  봄은 가을에 묻은 불씨를 꽁꽁 동인 겨울의 긴 터널 속에서 생명의 싹을 틔울 수많은 날을 기다린다. 사람 사는 일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각박하고 메마른 삶이 우리네 앞에 가로 놓여 희망의 불꽃이 사위어가도 다시 활활 타오를 것임을 아는 시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봄날 아침 언 땅을 녹이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의 함성처럼 기지개를 켤 희망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향기롭고 풍요롭게 할 ‘우리 가슴에 묻어 둔/해묵은 풀씨의 이름을 깨우려하네’긴 동면의 어둠을 깨우려는 시인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햇볕 앞에 기지개를 켜는 모습으로 봄을 기상起床 시키고 있다.   




오월엔 시를 쓰지 않으리/ 연초록 잎새, 반짝이는 노래/ 그 햇살들의 속삭임만으로 충분한/ 시를 엿듣는 바람이 되지
                                                              - 중략 -
내 마음 전할 그 사람/ 오월에는 꼭 온다 했으니/ 창가에 설레는 마음만으로 충분한/ 밤새, 시를 쓰지 않아도 되지/ 근심의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지.
                                                          - <오월의 詩> 일부

  시인은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토로하는 시점으로부터 그 시가 갖는 상징성을 드러낸다. 오월엔 시를 쓰지 않으리’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지 않아도 오월의 연초록 잎새와 햇살의 속삭임만으로도 오월의 자연이 가져다주는 시의 언어를 엿들을 수 있다는 김은식 시인의 감성과 상상력의 결합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는 시의 실체 속에 시인의 체험이 담긴 진실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많은 시인에게 시는 왜 쓰는가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지 않지만, 그리움은 설렘이라는 등식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동화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당신 향기 그윽한 옷/ 가슴에 꽃잎 수 놓인 옷/ 입어도 떨어지지 않는 옷/ 빨아도 줄지 않고/ 색이 바래지 않는 옷/ 철 지나도 버리지 않는 옷/ 해마다 다시 꺼내 입고 싶은 옷/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옷/ 예쁜 새들이 지저귀는 옷/ 포근하고 따사로운 옷/ 당신이 내게 선물로 주신 옷/ 봄은 한평생 입어도 새뜻한 새 옷/ 새 옷인 걸 이제 알았네.
                                                                - <새봄> 전문

  시는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진실함과 생生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우러질 때 상징의 옷을 입는다. 시인은 두터운 겨울의 옷을 벗고 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3월의 햇살 아래 골목마다 집집마다 개나리, 목련, 복사꽃 등등 수많은 꽃이 저마다의 옷(향기로운 옷, 꽃을 수놓은 옷, 빨아도 줄지 않고 바래지 않는 옷, 철 지나도 버리지 않고, 새의 노래가 담긴 옷, 입고 또 입어도 산뜻한 옷, 등)으로 갈아입고 자신을 보러 와서 함박웃음을 머금을 뭇 생명을 기다린다. 정말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초들의 옷은 어떤 옷이 어울릴까? 새봄을 기다리는 마음들이 한 땀 한 땀 기워 오래도록 버리고 싶지 않은 자유라는 옷은 어떨까? 첩첩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설 새봄 같은 옷 그 옷이 바로 새 옷이라는 것을 아는 김은식 시인의 정신세계, 이 봄 천지 사방이 푸르다.       


홀로 가는 길/ 달빛처럼 함께 걷는 동행이 있다// 누구신가/ 물어볼 양 하면/ 벌써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뒤를 돌아보아/ 반가이 웃으면/ 그도 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어디에서 오신 누구신가/ 알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 사람// 인사차 물어보는 내게/ 알면서 묻는다는 듯/ 빙그레 웃는 표정, 만월이라 한다// 그날 밤/ 고갯마루 언덕길 넘을 때/ 초승달 눈썹으로 웃어주던 달빛//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마음속 시나브로/ 만월의 밝은 정겨움으로 다가와// 세월 가면 기울어도/ 다시 차오를 달빛 동행/ 그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 <달빛 동행> 전문

  불가에서는 사람의 한 생을 찰라 라고 한다. 맨몸으로 와서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일생의 순환 과정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동행은 아무도 없다. “차창 밖 내다볼 땐/ 산도 나도 다 가더니/ 내려서 둘러보니/ 산은 없고 나만 왔네/ 다 두고/ 저만 가나니/ 인생인가 하노라” 노산 이은상 시인의 <동행>이란 시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달빛 함께 달려온 동행’만월이란다. 만월 그는 과연 누구일까? 평생을 함께 살아오고 또 살아갈 반려자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자식들, 부모 형제, 친구일 수도 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기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숱한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세월 속에서 <세월 가면 기울어도/ 다시 차오를 달빛 동행> 그런 동행이 있다는 것은 정말 복된 삶이 아닐까?     

너의 생각이/ 내 안을 걷고 있을 때 생겨난 길이 있다// 예전엔 낯설었던/ 세상길에서// 너로 하여 생겨난/ 그 길은/ 바라보아 찾을 수 없어// 상념으로/ 가슴으로/그리움이 오가며 생겨난 길
                                                                –<중략> -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꽃이라 얘기하며//그리운 것들을 별이라/ 얘기하며 걷던 길/ 너의 생각이 내 안을 걷고 있을 때 생겨난 길이 있다.
                                                              - <길>일부

    인간은 자신이 걸어오고 앞으로 걸어갈 숙명의 길을 찾아 방황하는 나그네다. 너와 나라는 이분법적 현실 속에서 생각의 합일을 이루어 하나가 될 때 같이 지향하는 길이 있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길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의 길이 될 수도 있고,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시 속에 나타나 보이는 길은 아름다움만 생각하고 그 아름다움이 그리움으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 고뇌하고 아파했을까? 문득 프러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처럼 두 길을 한꺼번에 택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김은식 시인의 시 말미에 <너의 생각이 내 안을 걷고 있을 때 생겨 난 길> 이라고 했다. 김은식 시인이 길의 끝자락에 서서 반추하는 그 길은 과연 어디로 통하고 있을까?     


저무는 여름 자락/ 해거름에/ 풀벌레울음/ 긴 여운 툇마루에 젖는다
                                                                  -<중략>-
붉은 연정을 싣고 떠내려오다/ 불씨를 안고 난파하는 배/ 이산, 저산/ 불붙는 가을빛 꿈을 꾼다// 어찌할 수 없이/ 바라만 보아/ 만산을 다 태우고 저절로 사위어갈/ 말릴 수 없는 붉은 연정/ 가을빛 꿈을 꾼다.
                                                              - <이른 秋想> 일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어느 쪽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의 깊이는 사뭇 달라진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사계四季를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 인간은 한낱 그 속에 속한 하나의 일부일 뿐이다. 조물주의 손길은 변화무쌍하다. 원형이정元亨利貞 가을은 이利의 계절이다. 한여름 햇볕이 달구어 놓은 산야山野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섞어 붓칠을 해나가는 화가(조물주)의 눈길에 따라 그려나가는 한 폭의 추상秋想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더욱더 고조시키기도 한다. 김은식 시인이 느끼는 가을 풍경은 아마 시인의 자라 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게 보인다. 모캣불 피는 마당 가 툇마루에 둘러앉아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별을 헤이든 그리움의 고향일 수도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억일 수도 있다. 만산홍엽이 품은 붉은 연정이 가져다줄 가을빛을 꿈꾸는 시인의 간절한 속내가 뀌뚜리 울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공단의 휴일 아침/ 간밤 내린 가을비에/ 순리의 시간을/ 노랗게 떨구어낸 은행나무 가로수// 기계음의 무력시위 앞에/ 계절은 모처럼 한산한 공단 길로/ 가을을 수복하고/ 노오란 국기를 내건다
                                                          - <중략> -
정작 소중한 것은/ 얻는 것보다/ 가지는 것보다 떨어내고, 흩어내는 것의 아름다움//
우리 인생도 그들처럼 흐를 수 있기를
                                                    - < 가을 수복(收復)> 일부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길, 가을비를 맞으며 걷는 시인이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면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이지만 삭막하기만 한 공단 길과 공단의 기계음이 쌓여나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다. 소멸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생성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다. <정작 소중한 것은/ 얻는 것보다/ 가지는 것보다/떨어내고 흩어내는 것의 아름다움// - 략- //우리 인생도 그들처럼 흐를 수 있기를>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계산된 이유와 조건보다 항상 따뜻이 배려하고 이기는 것보다 지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는 인간성을 수복하는 것이라는 김은식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다.     

평생 짊어지고 가는/ 내가 주인이 아닌 등짝// 때론 누군가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
스스로 어루만질 수 없는/ 마음의 등도 있다// 그 손길을 기다려/ 기대고 싶은/ 우리는,/ 보이지 않는 등을 가졌기에/ 사랑할 수 있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이 세상일들 앞에서/행복해한다.
                                                            - <마음의 등> 전문
                                                                                               
살아가는 동안/ 길가에 서 있을 때 행복하다// 길옆에 서서/ 나무인 양/ 너를 손짓할 때// 무성한 잎은/ 밤길을 걸어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 길가에 서서/ 먼 데 너를 볼 수 있는/ 나무가 되면/ 바람으로 오는 너의 향기// 살아가면서/ 오직 그 하나의 이유로/ 흔들릴 때 기다림은 행복하다.
                                                      - <살며 행복할 때> 전문

  조금은 바보스럽고 조금은 어눌한 모습을 보이며 남이 파고들 수 있는 틈을 내어 줄 때 서로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표정은 의외로 평범하다. 비가 올 때 우산을 받쳐주고, 목이 마를 때 물 한잔을 나누어 마시는 작은 보시를 실천하는 사람, 스스로 어루만질 수 없는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작은 일이 쌓일 때 행복은 찾아온다. 평범함이 행복의 조건이라며, 흔들리며 기다리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행복의 전도사가 아닐까?   

문에는 귀가 있어/ 제 말 하기 무섭게 찾아오는 이를 반기게 하고// 문에는 눈이 있어/ 언제나 기다림의 시선을 떼지 못해 그를 보게 한다// 문에는 손이 있어/ 반가운 이가 늘 잡아주던 온기가 있고// 문에는 발이 있어/ 먼데 소식을 앞서 마중하고픈 설렘이 있다.
                                                              - <문에는> 전문

  문에 귀가 있고, 눈이 있고, 손이 있고, 발이 있고, 온기가 있다는 시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것 같다. 시인이 느끼는 세상은 그래서 더 따뜻하고,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인가 보다. 아, 그래 그래서 사람들은 설렘을 간직하고 사는 모양이다.   

내 친구 푸른 소년 소나무에게/ 늙은 어머니 편지 부탁하고/ 작은 냇가 개울물 소리에겐/ 고향 소식 부탁했었지// 떠나올 적 살구나무 아래/ 술래로 묻어둔 유리구슬은/ 까만 눈을 가리고 별에게 소원을 빌며/ 아직도 작은 소년, 고사리 흙손을/ 눈 비비며 찾는다하네
                                                              -<중략>-
// 유리구슬이 눈물을 글썽이고/ 별들도 눈 가리던 그 밤/ 비에 젖은 내 친구 푸른 소나무/ 우정의 비 같은 눈물, 젖은 무게에/ 솔가지 부러져 울었다 하네.
                                                          - < 고향 전보> 일부

  “함동선 시인은 고향은 단순한 향수의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감각, 페르낭데스가 말한 구체 감각이라는 원형으로 재현되는 방위 감각이라고 말했다.” 김은식 시인의 고향은 그리움의 회귀 공간이다. 이 시의 시간적 시점은 과거이다. 과거의 공간으로 투영되는 고향의 모습은 유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시작하여 아직 현재 머물러 서성이고 있다. <채수영>평론가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이타적 심리행위라고 했다. 김은식 시인의 시에는 (어머니, 소꼽친구, 유리구슬, 푸른 소년, 등) 원형회귀의식이 항상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순수와 본질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인간존재의 단절이 아니라 자아의 본류를 찾고자 하는 사향 의식의 연속성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과 설렘이 머무는 곳이다. 

이 가을에/ 그리운 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노라/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해// 오지 않는 당신의/ 막연한 뒷모습을 붙잡고/ 탄식과 절규의 나날들이/ 낙엽 되는 이 가을// 이 계절이 지나면/ 영영 오지 않을 예감 앞에/ 마지막 남은 인간다운 수단/간절한 그리움을 앓는 일이다// 당신을 꼭 빼닮은/ 그리움을/ 당신인 양 붙잡고/ 한평생 그를 위해 사는 일이다// 그리움의 습성을 외우고/ 그리움을 의지하며/ 그리움의 모습을 닮아// 그의 발을 씻기고/ 그의 이부자리를 봐온 세월// 이 가을엔/ 정녕 오지 않는/ 당신은 가고//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이 사람/ 고마운 사람./ 당신을 꼭 닮은/ 이 사람의 사람으로 사는 일이다.
                                      - <이 사람의 사람으로 사는 일이다> 전문

    김은식 시인은 이 시를 홀로 되신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쓴다고 했다. 예전엔 세상에서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희생과 눈물과 그리움이 점철된 삶이었다. 삼종지도 三從之道, 여필종부 女必從夫 라는 도덕률을 정해 굴레를 씌웠다. 이 시속에는 떠나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대신해서 쓴 시이다. 그리움을 앓는다는 것은 애착이나 소유가 아니다.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어머니의 그리움을 한평생 지켜보고 살아온 시인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보다 더 애절해 보인다.
  김은식 시인의 시 130여 편 중에서 13편의 시를 선정하여 시인의 시향에 젖어보았다 시 전반에 녹아 흐르는 정서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애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숱한 질곡의 시간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녹여내었다. 이러한 다양성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설 것이다. 세상 어떤 권력이나 물질적인 풍류보다도 도시의 메커니즘 속에서 따뜻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한 사랑과 참 나를 찾아가는 창조의 작업이야말로 창조의 또 다른 문학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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