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이상국 시인 다섯번째 시집 출간

홈 > 시 백과 > 시집소개
시집소개
 
새로 나온 시집, 소개할 시집을 반드시 사진과 함께 올려주세요.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이상국 시인 다섯번째 시집 출간

이준후 0 3178
진부령 천연원료로 시를 짓다…이상국 시인 다섯번째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 
 
이상국(59) 시인의 일터는 백담사 만해마을이다.
속초에 살면서 매일 진부령 넘어 만해 마을까지 출퇴근하는 그에게 진부령은 시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열린다.
좌우로 펼쳐진 영동·영서 일대의 산천초목과 어둠,짐승과 별들은 그가 퍼다쓰는 무한한 시의 원료가 된다.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는 등단 30년 만이자 제1회 백석문학 수상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이후 7년 만의 신작시집이다.

“내 스무살/저 지랄 같은 새벽,/아버지 소 판 돈 몰래 들고/서울 가는 디젤버스 기름냄새에/개처럼 헐떡이며 넘던 영”(‘진부령’)에서 보듯 진부령은 이번 시집의 중심에 서 있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가래를 돋워내고는 했는데//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마당에 눈이 가득했다//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일부)제목시에 나타나듯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는 ‘별’이다.

윤동주의 시에서 별이 순수와 구원의 염원을 상징한다면 이상국에게 별은 인간의 거주지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별은 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쓸데없이 가진 게 많은” 아메리카나 유럽 쪽으로 이 별이 돌 때면 “별은 망가질 듯 삐걱거린다”(‘하나뿐인 별에서’)시인은 그 별에서 내리고 싶어한다.

“우리가 더 가난해지거나/시 같은 건 안 써도 좋으니/또다른 별에서 만날 수는 없는지/이보다는 훨씬 못하더라도/내리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별은 없을까”(‘이 별에서 내리면’) 이번 시집에서 ‘별’과 짝을 이루는 것이 ‘어둠’의 이미지다.

시인은 산속 어둠에 웅크리고서 “전깃불에 겁먹은 어둠들이 모여 사는/산 너머 후레자식 같은 세상”(‘가라피의 밤’)을 생각한다.
‘가라피’는 양양 오색에 있는 산골 마을. 여기서 시인의 성찰은 빛난다.
“나는 너무 밝은 세상에서 눈을 버렸”지만 “내 속에 차오르는 어둠으로/반딧불이처럼 깜박거리며 가라피를 날아다니고는 했다”라는 시구가 그것. 그는 진부령에 널린 천연의 원료를 한 아름 퍼다가 생의 깊고 오묘한 의미와 버무려 영롱한 언어의 별을 만들어낸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