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문학상 탄 떡볶이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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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문학상 탄 떡볶이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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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것도 없고…그래서 내가 하는 그 한도 내에서 글을 써요. 제 글이 어렵지 않아서 좋다고들 하는데, 저는 아는 게 그거라서…. 머리로만 쓰는 글은 부족하죠. 공부에 대해서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마음은 있는데 아직은 그런 여유가 없죠. 사는 게 최우선이니까. 근데 어떻게 보면 이건 저만이 쓸 수 있는 얘기잖아요. "

'노점상 아줌마의 일기-아픈 하루'라는 짧은 산문으로 이달초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글부문 우수상을 받은 송영애(34)씨를 만났다. 글에 쓴대로 그는 인천시 부평구에서 포장마차 노점을 한다. 간식거리를 사러나온 공장 여직원들, 하교길의 학생들, 주부들, 상인들이 끊이지 않아 호떡을 부치랴, 순대를 썰랴, 떡볶이를 담으랴 바삐 손을 놀리면서 송씨는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결혼전부터 10년 넘게 미싱사 일을 했어요. 근데 힘들게 일하고도 '내 일'이라는 기분이 없었어요. 10년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월급도 그렇고, 지겨웠어요. 결혼하고도 직장을 가졌는데 아줌마라고 같은 일 하고도 더 적게 받고…"


한동안 두 아이 키우는 일에 전념하던 그는 4년전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처음 1년은 시행착오도 적잖이 겪었다. 시세보다 비싸게 주고 산 중고 포장마차는 비오는 날 '포장'이 다 날아가버렸고, 손님이 올 때마다 기다리지 않도록 바로바로 호떡을 부쳐내는 일도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았다"고 돌이킨다. 팔지도 않는 술을 내노라는 취객들이 있는가 하면, "핸드폰이 몇 번이냐""하루 쉬고 같이 놀러가자"는 중년신사들도 있었다. "차츰 요령이 생겼죠. 순대가 1인분에 2000원인데, 술취한 분 중에 공짜로 달라는 사람, 500원어치만 팔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500원 받고 2000원어치를 그냥 드려요. 속으로는 무서울 때도 겉으로는 대범하게도 하고요. "

상을 탄'아픈 하루'는 곧잘 술에 취해 찾아오는 동네 할아버지의 엉뚱한 주문에 몇 차례 실랑이를 거듭하다 결국 설움이 북받쳤던 날의 기록이다. 대개는 미뤄뒀다가 글을 쓰곤 했는데, 그 날은 울면서 썼다고 했다. "저 위쪽에서 장사할 때 일이에요. 며칠 전에도 요 앞으로 그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는 걸 보고 또 가슴이 울컥했는데…그래도 고맙죠. 덕분에 이런 글도 썼으니까." 송씨는 포장마차 일을 두고"여러 사람 대하는 게 즐겁고 재밌다"고 했다.

전남 진도가 고향인 송씨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넉넉치 않은 살림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조금 힘들었는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항상 일기를 쓰고 있었어요. 책이요? 너무 어려워서 책이 없었어요. 집에 어른들 보는 책 한권뿐이어서… 사회 나와 돈벌면서 마음껏 사보게 됐죠. 그 때 베스트셀러였던 '오싱'도 보고,'오세암'도 보고, 서정윤 시집도 보고…"그의 사회생활은 또래들보다 때일렀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와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야학에도 좀 다녔어요. 전태일 열사도 그렇게 알게됐고.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된 게 더 기쁘고 영광이에요. 박노해 시집'노동의 새벽'도 그 무렵 읽었는데, 마음에 그렇게 와닿더라구요. "

지금도 아들의 방을 가득 메운 책들을 송씨는 '재산목록 2호'라고 한다. 1호는 가족이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1996년 결혼해 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과 다섯살바기 딸을 두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승근이가 어느새 동생을 데리고 와서는 간단한 배달심부름을 도왔다. "엄마가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거다, 이렇게 단단히 주입을 시켰죠. 부끄러워하거나 하지 않아요. 학원 이런 것보다 사람 됨됨이가 되게 키우려고 해요. "엄마가 쓴 글은 빠짐없이 읽는다는 승근이는 최근 백일장에서 상을 타 송씨를 더 기쁘게 했다.

야학시절에도 열심히 글을 쓰곤 했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송씨는 글쓰기의 꿈을 한켠으로 미뤄뒀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시인 최영호씨가 운영하는 다음카페'시인의 바다'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서로 글을 올리고 평을 나누면서 매년 정기적으로 시화전.시낭송회도 여는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송씨는 "인생이 달라졌다"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요즘도 밤 10시 포장마차를 접고 집에 돌아가서도 새벽 한두시까지 카페를 둘러보고 잠자리에 든다. 전태일 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카페 회원의 권유 덕분이었는데 "상을 받은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송씨의 글솜씨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생활글을 방송에 투고해서 상품으로 탄 가전제품이 한아름이고, 카페에 공개한 글 가운데 두 편은 'TV애니메이션-행복한 동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모두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접 겪고 느낀 얘기들이다. 송씨는 처음에는 "시는 해도 해도 부족하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쓸 주제가 많아서 시로는 감당이 안된다"고 했다. 만약 소설을 쓴다면, 하고 물었더니 "상상하는 걸로 말고 내가 해온 얘기만으로도…"했다.

"책들을 보면서 성격을 바꿨어요. 미싱사 때 일 잘하다가도 관리자가 다가오면 부들부들 떨고 하는 성격이었는데…. 결혼 전에는 참 많이 울었어요. 술만 먹으면 우는 사람, 그게 저였어요. 근데 운명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팔자가 있다고 해도 그건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고."

송씨는 요즘 읽는 책을 선반에서 꺼내 보여줬다. 화장품회사 여사장의 자서전이였다. "이 직업이 좋은 게 이런 점이죠. 손님이 없을 때면 늘 책을 봐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해요."

포장마차 처마에는 두 아이의 사진과 송씨의 자작시 서너편이 걸려있었다. 손님들이 이따금 고개를 들고'송영애씨가 누구에요'하면 미소를 지었다. 포장마차 차양 밑으로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한결같이 짓는 미소 그대로다. 4년간 터득한 장사비결을 물었다. "떡볶이 맛도 중요하지만, 친절이 중요해요. 음식뿐 아니라 미소도 팔아야죠. "나중에 분식집이라도 차리게 되면 실내를 온통 시화로 도배하고싶다는 꿈도 들려줬다.

<중앙일보 11/24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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