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집 출간 30주년맞은 이해인 수녀 ‘민들레…’4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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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출간 30주년맞은 이해인 수녀 ‘민들레…’4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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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가 도시의 신록을 적시던 날의 오후, 서울 혜화동 성당 입구에서 이해인 수녀를 맞았다. 부산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막 상경하는 길이라고 한다.

올해 이순을 맞은 그의 표정은 ‘명랑소녀’처럼 밝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정겨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본다. “혜화동 성당은 저와 인연이 깊어요. 첫 영성체의 추억이 있는 곳이지요.”

여고를 졸업하던 해,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수도원에 입회한 이해인 수녀. 이제 40여 성상을 헤아린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도 어느덧 출간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신도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돌려보던 시집은 소리 소문 없이 팔려나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48쇄를 찍었다. “참,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요.”

시집은 수도원의 깊은 담 안에서 아무의 손도 거치지 않고 홀로 숨어서 기도하듯 써내려간 100편의 시를 묶었다. 시 한 편, 한 편엔 자신의 전부를 향기로 바치고자 하는 젊은 수도자의 헌신과 순명(順命)에의 의지가 영혼의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러면서도 고독과 목마름, 기다림과 슬픔을 어쩌지 못한다. “노오란 내 가슴이/하얗게 여위기 전/그이는 오실까….”

시인 구상은 “시인의 영글어가는 영혼의 모습이 너무도 장하고 아름다워서 눈시울을 적신다”고 평했다.

이 수녀의 시는 단순하고 소박하다.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하다. 정련된 언어라든가, 형식상의 실험이라든가, 심오한 사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소녀 취향이고 감성적이라 문학적인 깊이와는 거리가 있다?

“제대로 옷을 못 입어 볼품없어 보이고, 써도 써도 끝까지 부끄러운 시지요. 나를 꼭 닮은 게지요. 혼자서 맨몸으로 펄럭이는 촛불 같다고나 할까요. 나의 언어는 나의 제물(祭物)입니다.” 그러나 묵상의 세계에서 퍼 올린 풋풋한 아마추어의 시는 기도처럼, 사랑의 고백처럼 독자들에게 파고들었다.

이 수녀의 글은 한결같다. 시든 산문이든 이웃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모두 시로 쓰는 편지요, 편지로 쓰는 시다. 실제 그에게 있어 편지를 쓰는 일은 ‘문서 선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에만 10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그는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모두 합치면 5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재벌 수녀님’이라고 놀리니 환하게 웃는다. “시인의 영광도, 인세 수입도 모두 하느님의 것이지요. 재물은 모두 교회에 귀속된답니다. 대신 하느님께 용돈을 타 쓰지요.”

그런 그도 독자들에게서 받은 편지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무소유의 삶 속에서도 그것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고. 이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도 수도원의 종소리가 고운 환청으로 들린다는 이해인 수녀. “수도원 생활은 기쁨의 되새김질이 필요하다”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담백하고 수수한 빛깔의 평화와 기쁨…, 그것은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들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일까.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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