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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현대시작품상] 김영남 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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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2-26 13:22
제7회 [현대시작품상] 김영남 시인 수상
 글쓴이 : 가을
조회 : 3,296  
심사위원 원구식, 정과리, 이향지


월간 [현대시]에서 주관하는 제7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로 김영남 씨가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마량항 분홍 풍선] 외. 수상금은 500만원.




심사위원은 원구식(시인, 현대시 주간), 정과리(문학평론가, 연세대 교수), 이향지(시인) 씨가 맡았다.




시상식은 오는 9월 19일 오후 6시 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래는 수상자인 김영남 씨의 자선에세이다.

 

 

오줌싸개에서 공포의 황금어장까지

 

김영남

 

 

1. 청소년 시절과 오줌싸개

 

나는 등단작 [정동진역] 때문에 가끔 술좌석에서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혹시 고향이 강릉 쪽이 아니냐고. 어쩐지 해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의 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의 고향은 해변 마을이 아닌 산골 마을이고, 또한 정 동쪽의 ‘정동진’에 호응하는 정 남쪽의 ‘정남진’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이다. 장흥에서도 내가 태어난 곳은 앞산에서 뒷산으로 장대를 걸치면 걸쳐질 정도로 외진 산골이다. 햇빛도 아침 열 시 경에야 마당에 들어오고 오후 5시면 사라진다.
나는 이런 곳에서 3남 3녀의 둘째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는 이십오 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새벽 6시경에 일어나야 수업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이었지만 나는 그 통학길이 즐거웠다. 부모님이 주는 버스비로 라면땅이라는 과자를 사서 그걸 씹으며 걸어 다니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집안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6형제로 이루어진 대 식구를 수용하는데 세 개의 방을 가진 초가집 한 채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밤이 되면 이는 최악이었다. 나는 형 동생들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틈에 끼어 겨우 잠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면 꼭 사건이 일어났다. 간밤에 누가 이불 위에다 지도를 커다랗게 그려놓은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팬티는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고, 축 처진 나의 그림자와 함께 할아버지한테 꾸중을 호되게 들어야만 했다.
이후 내 머리맡에는 언제나 요강이 따라다녔고, 할아버지 미움은 내가 독차지 하다시피 했다. 할아버지의 잦은 꾸중, 나는 그 꾸중보다도 거적눈을 열고 날 노려보는 할아버지의 그 침울한 눈빛이 더 싫었다. 그래서 늘 어른거리는 할아버지의 그 침울한 눈빛을 지우고자 나는 할아버지 흰 고무신짝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축구공 차듯 발로 차서 먼 곳으로 날려버리거나, 아니면 그 한 짝을 훔쳐다가 엿장수에게 엿을 사먹어 버리는 것이었다. 냉수를 떠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사발 속에다 침을 한번 퉤 뱉어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냉수를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미움까지 합세한 통합 미움을 사게 된 것은 어느 날 밤 이후부터였다. 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 머리를 요강으로 착각해 그걸 깔고 앉아 급한 오줌을 시원하게 갈기고 난 뒤부터였다. 그 후로 잠자리 들기 전에 할머니는 내게 꼭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저귀를 중학교 3학년 때에야 겨우 뗄 수 있었다.
오줌은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공부만큼은 확실하게 가누었다. 중학교 전 학년 동안 전교 1등에서 3등 사이를 오갔다. 그래서 이불에 오줌을 잘 싸면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웃지 못 할 풍문이 동네에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나는 그 풍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골중학교에서 광주고등학교에 시험을 쳐 당당히 합격을 하였다.

 

 

2. 대학 시절과 똥개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구경하는 도시, 광주에 도착해 내가 가장 먼저 보고 싶다고 형에게 조른 것은 기차였다. 그러나 광주역에서 내가 구경한 기차의 첫 인상은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려주는 방앗간 집 아저씨 같았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이렇게 도시의 풍물들과 불화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한 나의 소심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발랄했던 시골생활과 달리 모든 것에 낯설어해 하고 자신 없어해 했다. 사람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이었고, 여학생들이라도 다가오면 붉힌 얼굴을 떨어뜨리고 들 줄을 몰랐다. 성형수술을 해 주지 않으면 가출하겠다고 시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두툼한 입술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다는 게 성형수술의 이유였다.
나의 요구가 부모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학업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교실 맨 뒷좌석에 앉아 엎드려 자거나 불량학생 행세를 하며 방인근 소설 등 연애소설에나 탐닉하며 고교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김우종 에세이는 당시 소용돌이쳤던 내 사춘기 시절에 문학 소년까지 꿈꾸게 했던 소중한 책이었다.
그렇게 흥미 없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는 광주를 떠나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중앙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2년여 다니니 재미없기는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전과를 생각하였으나 전과는 다시 입학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대안을 모색했다. 그래, 이럴 땐 듣고 싶은 강의를 찾아 도강을 하는 거야. 이렇게 하여 처음 듣게 된 강의가 간호학과에 개설된 여성학 강의였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여학생들뿐이고 남학생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님까지도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의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계기로 나는 대학생활의 재미를 찾게 되었다. 시론, 소설론, 영미 시ㆍ소설, 심리학, 노장사상, 현대철학, 연극학 등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강의를 들었다. 그 결과 나는 ‘똥개’라는 아주 고약한 별명 하나를 얻게 되었다. 전공인 경제학 분야 과목을 듣지 않고 주로 여학생이 많은 학과만 찾아다니며 똥개처럼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고 해서 동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똥이다. 이 기회에 도서관에 쌓여 있는 저 방대한 똥까지 먹어치우고 졸업하는 거다. 도서관에 쌓여 있는 책 절반 이상을 읽고 졸업하겠다는 거창한 야망도 나는 이때 세우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살게 되었고, 책을 읽다가 종료 벨이 울릴 때면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허리춤에 숨기고 나와 집에서 또 밤새 읽는 거였다. 그때 심취했던 책이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불경, 성경, 안톤 체호프, 셰익스피어, 서머싯 몸, 찰스 램, 기싱, 노자, 장자, 이문열, 김성동, 이양하, 유안진, 정목일, 김영랑, 신석정, 서정주, 김수영 등의 책이었다.
그 결과 나는 대학 3학년 말경에 전국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문화상에 시조를 당선시킬 수 있었고, 4학년 때에는 교내신문 주최 개교기념현상문예에 수필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또 국어국문학과 여학생 한 명도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현재 우리 집 사람인 안정숙이라는 여학생이었다.

 

 

3. 등단 시절과 공포의 황금어장

 

졸업하기 한 학기 전에 대부분 다 마치는 취직을 나는 졸업을 하고 한 달이 넘도록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여 취직을 하게 된 곳이 진로그룹의 한 계열사인 서광이었다. 여기에 입사해 인사와 교육업무를 맡게 되었으나 상관과의 불화로 1년도 다니지 못하고 사표를 썼다. 그리고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도 다니고 있는 중앙대학교이다. 나의 모교에 교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들어와 맨 먼저 결혼부터 하였다.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결과 문학에 대한 꿈을 다시 펼쳐보기로 하였다. 당시 이승하 시인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해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몇 편의 시를 써 봉투에 넣어 가지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국립묘지 부근 단독주택 지하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그날 밤 늦도록 맥주를 마시다가 가져간 시도 보여주지도 못하고 방모서리에 그냥 놔두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봉투를 다시 되돌려 받았는데 봉투를 뜯어보니 빨간 줄로 좍 그어져 있는 시와 이렇게 적힌 메모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형, 아무리 봐도 시적 자질이 보이지 않으니 이 기회에 문학할 생각을 아예 접고, 다른 방향으로 길을 한번 모색해보는 게 어떻겠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응답했다. “그래 두고 보자, 네 시를 얼마나 잘 쓰는지 모르겠지만 내 반드시 등단해 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라고. 그 날 이후 나는 혼자 시를 열심히 썼다. 그리고 2년 뒤인 1988년 12월 [월간문학]으로부터 당선 통보를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조병화, 홍윤숙, 박재삼 선생이었다. 나는 정말 기뻤고 세상에서 제일 큰일을 한 양 의기양양하기까지 했다. 당장 이승하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 소식을 알렸다. 그는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 메모의 내용은 진심이 아니고 형이 분발토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사과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과하는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좀 시원하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큰일을 해냈는데도 세상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어디 가서 나의 등단 이야기해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기대했던 원고청탁도 1년이 지나가도록 한 군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인들 모임에 나간다고하면 “시를 쓰려면 이승하 시인처럼……” 하는 아내의 핀잔까지 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한 참 지난 뒤에야 알았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시를 쓰는 것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놀고 마시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쪽이 훨씬 더 스릴이 있고 재미가 있었다. 특히 고스톱, 내기바둑 등 잡기에 깊숙이 빠졌다. 이때 또 하나의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공포의 황금어장’이었다. 물반 고기반 황금어장처럼 먼저 보는 사람이 내 돈을 다 훑어갈 수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내기 판에서 내가 이긴 적이 거의 없는데도 나는 마냥 그것을 즐긴 것이다. 그러나 잡기로 30대 시절을 다 낭비할 수 없는 것,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계획 하나를 새롭게 구상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비디오방 운영이었다.
나는 아파트를 담보로 하여 받은 은행돈으로 노량진에 비디오방을 냈다. 당시 국내에 비디오방 문화가 전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바로 성공할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으로 많은 돈을 번 것이다. 여러 군데 비디오방을 더 내고 주차장에까지 투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갑작스런 IMF 경제상황 도래로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번 돈은 모두 날렸고 집은 은행에 빼앗겼고 결국에 남는 것은 가족들의 빈 몸과 빚이었다.

 

 

4. 재기와 공포의 황금시인

 

이 무렵 실의에 빠져 있는 내게 제일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노명순이라는 여류 시인이었다. 그녀는 나의 [월간문학] 등단작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시인으로 오자마자 김영남 씨, 왜 그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있느냐며 빨리 다시 시를 쓰라는 거였다. 이유인즉 나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는 사람이고 시를 쓰면 금세 빛을 볼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게 이마에 쓰여 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분히 감성적이고 헤픈 내 씀씀이에 맞는 지적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래,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이 기회에 인생을 한번 바꿔보는 거야, 하고 신춘문예를 떠올리게 되었다. 당장 시창작 사숙을 찾았다. 그리고 정말 닥치는 대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쓴 시를 연말에 모아보니 40여 편이 되었다. 나는 신춘문예에 투고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정복여 시인을 찾아 투고할 시를 좀 검토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검토한 작품 20여 편을 골라놓고 나니 4개의 신문사에 투고가 가능했다. 제일 아끼는 작품을 순서대로 묶어 당선소감까지 써놓고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리고 연말의 회사일, 망년회 등에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12월 21일, [세계일보] 문화부에서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와, 걸렸구나 하는 확신과 함께 어떤 작품이 당선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확인해보니 그게 바로 [정동진역]이라는 시였다. 이때가 1997년도이었고, 내 나이 40세가 되는 해였다. ‘공포의 황금어장’이 ‘공포의 황금시인’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렇게 하여 오줌싸개, 똥개, 공포의 황금어장 등 고약한 별명들을 퇴출시키는데 아주 성공적인 퇴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신춘문예 당선시인!
남들은 몇 번씩 떨어지고 다시 도전해도 되지 못한 신춘문예를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단번에 당선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학 동창들과 직장 동료들조차 내가 진짜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냐고,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혹시 누가 써 준 것은 아니냐고,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그동안의 내 행세로 보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난 정말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보라는 듯이 등단한지 1년 만에 [정동진역]이란 시집을 내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응하는 거였다. 그래, 한 두 편도 아니고 이 많은 시들을 누가 이렇게 써 줄 수 있어?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집사람에게 혐의를 돌리는 거였다. 집 사람이 국어국문학과 출신이고 국어선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은 집사람을 소재로 한 시들을 많이 썼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대응하는 거였다. 그래, 어떤 바보가 자신의 쪽팔리는 내용을 소재로 하여 이렇게 우스꽝스런 시를 많이 써?
그로부터 4년. 이제 세 번째 시집 [푸른 밤의 여로]가 이번 달에 나오게 된다. 더불어 <현대시작품상>도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글을 매우 고통스럽게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몹시 기쁘다. 더 이상 내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기쁘고, ‘공포의 황금시인’으로 이제야 인정받을 것 같아 기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이것을 계기로 우리 집 사람이 여행으로 인한 잦은 외박을 부담 없이 허가해 줄 것 같아 나는 마냥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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