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은 영원한 5월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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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은 영원한 5월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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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회고한 피천득 옹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선생님 생일을 맞아 말린 꽃으로 장식한 '꽃 카드'를 댁으로 보냈는데, 그걸 못받고 돌아가시다니…. 하지만 선생님은 당신이 '오월'이라는 글에 쓴 것처럼 오월 속에 계실 것으로 믿어요."(이해인 수녀)

"선생님은 나이 칠십이 넘으면 글에 욕심이 들어간다고 글을 안 쓰셨지요. 왜 글 쓰는 분들은 아기 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참 순수한 분이셨어요."(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25일 오후 11시40분 피천득 옹의 별세 소식을 전해들은 지인들은 고인이 98세 생일을 맞는 29일을 코앞에 두고 떠난 것을 아쉬워했다.

1910년 5월29일에 태어난 고인은 '오월'이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5월을 좋아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중략)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오월' 중)

이해인 수녀는 "선생님은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란 말을 여러 번 하셨고, 스스로 명예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다"며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할 수 있었는데도 몇 년 앞당겨 그만둔 것은 그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돌아봤다.

이어 "가톨릭 영세를 받고도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고, 사회봉사를 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는 아버지와 고인의 인연을 회고했다. 장 교수의 아버지인 장왕록 박사는 고인이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시절, 그의 제자였다.

장 교수는 "제자를 참 아껴준 스승이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신년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고인과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재순 '샘터' 고문이다.

두 사람은 30년 넘게 해마다 첫눈 오는 날, 서로 먼저 전화해 안부를 물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인에게 세배를 가기 시작한 김성구 샘터 사장 역시 매달 한 번씩 고인과 목욕탕에 가는 일을 얼마 전까지 계속해온 돈독한 관계이다.

고인과 알고 지내던 문인들은 고인을 순수한 아이 또는 소년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표현했다.

고인의 미수(米壽) 잔치에 참가했던 박완서씨는 "'사람이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하고 그분의 늙음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며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드는데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난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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