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 한 잔 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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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 한 잔 같은 노래

가을 0 2759
흔히 ‘요즘 젊은 시’라고 부를 때 이는 확정된 개념이 아니다. 당연하다. 이전 문법으로는 도무지 해설을 달 수 없는 몇몇 젊은 시인의 작업을 멀찌감치서 가리키는, 다분히 편의적인 호칭에 불과하다. 몇몇 젊은 시인의 작업을 통칭하는 개념이 아직 정립된 바 없다 보니 그냥저냥 ‘요즘 젊은 시’로 통용될 따름이다.

하여 본의 아니게 ‘요즘 젊은 시’에 속하지 않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이 생겨나고 말았다. 소위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들, 예컨대 문태준·손택수·박성우 등이 그들이다. 오늘 그 ‘피해자’ 명단에 한 명을 추가한다. 두 번째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창비)를 발표한 신용목(33)이다.

신용목은, 말하자면 아름다운 청년이다. 말씨나 행동거지 모두 깍듯하고 용모도 제사상 위 밤처럼 반듯하다(그러고 보니 앞서 열거한 시인 모두가 순하고 바르다). 시는? 물론 시인을 빼닮았다.

‘돌 하나 집어넣어도/짧게 몸, 열었다/금방 닫는 강물/말 없다-비명이 갇힌 푸른 멍/(지난겨울 등에 찍힌 도끼자국은 어디에 숨겼는가)나그네처럼/발목 검게 적시고 선/나루, 사랑했고/사랑하며 사랑할 일들이/던지는 팔매마다 가는 손가락/여린 순으로 돋아/빈 손 저릴 때,’(‘돌 던지는 生’ 부분)

시인이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수면에 작은 파문이 이는 이 낭만적 풍경을 바라보며, 시인은 강물이 짧게 몸을 열었다 금방 닫는다고 노래한다. ‘등에 찍힌 도끼자국’은 지난 계절 얼음장에 그어진 금을 이르는 것이리라. 어쩜 이리도 착할 수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일들이’에선 차라리 목이 멘다.

신용목의 특장은 뭐니해도, 섬세한 묘사와 애잔한 감상에 있다. 부지런히 밑줄쳤던 몇 구절을 예다 옮겨 놓는다. 어디에 따로 적어둬도 좋을 법한, 곱디고운 글귀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별’부분

‘소래 뻘밭 비스듬한 포장집에서 꽃게를 삶았다/…/붉은 살 속에 흰 뼈를 감추고 간 나는/붉은 뼈 속에 흰 살을 숨긴 게를 본다/…/뼈마디 붉도록 달아본 적이 없다.’-‘권태로운 육체’부분

‘수평선을 너무 오래 보았다 안구를 베였다//숙소로 오는 동안 눈물이 났다//그러나 이미 늦게 울었다’-‘대천항’부분

하지만 무엇보다 귀한 건, 이 청년이 저 낮은 곳을 쳐다볼 줄 안다는 데 있다. 신용목의 풍경화가 여느 이발소 그림과 다른 까닭이다. 시인은 식당 입구에 놓인 신발 무더기를 ‘키 높이 물컹한 슬픔을 등 태우고 온 검은 등뼈들’(‘마포, 해궁막회’ 부분)이라고 부를 줄 알고, 공원 벤치에 누운 노숙자의 자존심을 읽을 줄 안다.

‘도심 공원에서는 벤치에 누운/사람이 야생이고//건너 고깃집 야외식탁을 들러온 바람은/검은 냄새의 문명이다/…/한 번에 한 개비씩 담배를 빌려가는 손과…그러고도 한사코 불은 빌려가지 않는//빳빳한 머리카락이 푯말처럼/서 있는’(‘야생동물보호구역’ 부분)

시인은 늘 허공을 응시한다. 거기엔 바람이 있고, 바람의 어금니가 있다. 대나무 마디, 허공에 빗금 긋는 빗줄기, 내려앉은 새 한 마리, 이 모두는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가 깨문 흔적이다. 시인의 상처가 굳이 느껴지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다. 따라 읽고 좋으면, 그러니까 가슴 한구석이 허물어지거나 문득 어머니 목소리가 궁금해지면 그저 족하다. 따뜻한 차 한 잔 얻어마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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