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未堂 고택 수년째 ‘유령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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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未堂 고택 수년째 ‘유령의 집’

가을 0 3022
[서울신문]마당 여기저기 쌓아놓은 고철더미 옆에서 도둑고양이가 뛰어나왔다. 녹슨 철제 대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지만, 담을 쉽게 넘나들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나무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마당에는 지난해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나무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켜켜이 쌓였고, 방마다 찢어진 벽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문짝이 떨어진 채 주저앉은 싱크대가 도둑고양이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고(故)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택(古宅)이다.

미당의 고택(대지면적 304.2㎡·건물면적 154.71㎡)이 지방자치단체의 졸속행정으로 4년 넘게 흉물로 방치돼 있다. 미당은 1970년부터 2000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 됐고, 초등학생들은 이 집을 지나기가 무섭다고 아우성이다.

2003년 12월 관악구가 이 집을 매입할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관악구 담당자는 “고택을 매입하라는 서울시의 지시에 따라 7억 5000만원의 교부금을 시에서 받아 사들였다.”면서 “문화재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몇몇 언론이 ‘미당의 고택이 민간인에게 넘어가 철거 위기에 있다.’고 보도하자 시가 매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관악구는 매입 이후 2004년 7월 고택을 활용한 ‘관악문학사랑의 집 건립계획’을 마련하고 개·보수비용 7억원을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도리어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산 지원을 거절했다. 구는 지난해 1월 긴급복구비용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서울시에 특별교부세 3억 4300만원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문화재청은 “고택은 1969년에 지어진 흔히 볼 수 있는 2층 양옥이어서 문화재가 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미당의 친일 논란도 개·보수의 걸림돌이다. 관악구 관계자는 “매입 당시부터 시인의 친일경력 때문에 보존에 찬반 논쟁이 있었다.”면서 “향후 사업도 이 논쟁 때문에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전북 고창의 미당 생가가 문학관과 함께 잘 보존돼 있어 서울 고택의 매입 및 관리 자체가 ‘중복 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악구 관계자는 “구에서 조사한 결과 내년에도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집이 붕괴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서울시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구 자체 예산으로 응급보수는 하겠다.”고 밝혔다.

글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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