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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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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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

김한규 0 2489
1

볕 좋은날 놀이터엔
이불들이 줄줄이 허연 속옷만 걸치고
스트리킹을 한다

볕 좋고 바람 있는 날
가슴을 깎아먹던
좀벌레처럼
집집마다 이불을 뒤집어 널고

서방에게 받은 핀잔
아들놈에게 받은 설움 토해내고자
빨가벗겨 놓고
사정없이 빗자루뭉둥이로
알몸을 후려친다

213동 놀이터 옆 은사시나무
일렬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응원을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그만
시꺼먼 설움을 거뒀다

마른 눈물을 훔치며
시엄니께 받은 멍든 설움까지


2

볕 좋은 날에는 빨래야 놀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돌고돌아 초주검 직전에야
청정 환생하였겠지만 그래도 그 옛날
시냇가에서 빨래방망이에 수 없이 얻어터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아주 먼 옛날도 아닌 옛날 시린 강가에서
시엄니 속적삼은 까닭도 모르고 얼마나 터졌을꼬
시뉘 고쟁이는 펄펄 끓는 양은대야에 또 얼마나 처절했을꼬

그래도 넌 좋은 세상 만나 더군다나
백의민족이라 앞장서 널리지 않았더냐
이제 다 끝난 일이야
더 이상 억울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어야

겉옷은 담장 쪽으로 속옷은 안채 쪽으로
나란히
바람 따라 살랑살랑 하얀 건반이 되는 거야
볕 좋은 쪽을 향해서 말야

장마 끝, 볕 좋은 날에는 빨래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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