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 시인의 '바람과 햇살과 별빛'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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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 시인의 '바람과 햇살과 별빛' 외

정연복 0 4455
<바람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 시인의 '바람과 햇살과 별빛' 외

+ 바람과 햇살과 별빛

꽃잎에 맴돌다 가는 바람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꽃잎의 몸은 흔들렸으리

꽃잎에 머물다 가는 햇살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햇살에
꽃잎의 마음은 따스했으리

꽃잎에 입맞춤하는 별빛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별빛에
꽃잎의 영혼은 행복했으리

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여


+ 바람

바람은 꽃잎 위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들에게
찰나의 입맞춤을 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히 사라질 뿐

바람은 꽃잎에
연연(戀戀)하지 않는다.

꽃잎처럼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한줄기 따스함으로 닿았다가

총총히 떠나간
그분의 삶이 바람이었듯

나의 남은 생애도 바람이기를!


+ 바람이 하는 말

바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니

오월의 푸른 잎새들의
갈피마다 살랑대는 바람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없는 말

흘러라
막힌 데 없이 흘러라

그러면 잎새들은 잠 깨어
깃털처럼 흔들리나니

모양도 빛도 없는
나의 생명의 유일한 힘은

그저 흐름의 힘일 뿐
그것 말고 나는 무(無)일 뿐


+ 바람처럼

어제는 하늘이 폭삭 내려앉을 듯
맹렬한 폭풍우 속에

나무들도 덩달아
심하게 몸살을 앓더니

오늘은 맑게 개인
유월의 밝은 햇살 아래

살랑살랑 춤추는
저 푸른 이파리들

보이지는 않아도
지금 이파리들의 사이마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머물러

이파리들은 저렇게 사뿐히
흔들리고 있는 게다

나도 
바람처럼 살고 싶다

없는 듯 있는
저 보이지 않는 바람


+ 바람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
가만히 뒤돌아보니

허공에 휘익
한줄기 바람이 스쳤을 뿐인데

어느새 반백 년 세월이
꿈결인 양 흘러

나의 새까맣던 머리에
눈꽃 송이송이 내리고 있네 

바람에 꽃잎 지듯
생명은 이렇게도 짧은 것을

덧없는 세월이기에
어쩌면 보석보다 소중한 목숨

이제는 마음이야 텅 비워
바람 되어 흐르리라


+ 바람

고단하지 않은 생명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너른 대기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 끝

잎새에 내려앉아
가쁜 숨 잠시 고르다가도

이내 바람은
총총히 떠난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 다음의 거처로

흐르고 또 흐르는
바람이여


+ 바람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부는 것일까

시작도 없이
끝도 없이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흐르고 또 흐르는
바람이여

눈물겨운 절대 고독인 듯
찬란한 절대 자유의

기막힌
한 생이여

나의 생도
한줄기 바람이기를!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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