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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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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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그 후

조은세 1 2181
열병, 그 후 / 조은세


1
아침 햇살이 두려웠다
발가벗겨서 거리 돌림을 당하는
간음한 여자의 부끄럼보다
더한 수치가 담금질을 해 댔다
갱도에 갇혀
빛 한 줌으로 벽을 긁는
문드러진 손톱에선
생리 혈보다 더 진한
핏덩이가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죽음을 택한,
인정하지 못한 비굴함에 치를 떨던
나였다

2
샤워를 했다
물이 참았던 속내를 토해내자
나신의 자존심은
미친 듯 괴성을 질러댔다
부풀어 오르기만 했던
거품들이 하나 둘 꺼지고
풋내가 물씬 나는
고갱이만 남았다
바로
이것이었어
지금껏 가면을 쓰고
나를 조종하던 것이

3
욕망을 부추기던 덩굴을
뿌리째 베어 풋내를 씻고
스스로 옭아 매었던 전족도 풀었다
오랜만에 문을 연 숨통은
발효만 거듭하던 기형 종균은 버리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놈만 골라
새로운 숨을 주었다
1 Comments
손유청 2004.02.26 17:05  
축하드립니다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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