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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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적

이종화 0 1432
아주 어릴적

집과 바깥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신기했다
모두 나를 좋아했지만 머리 쓰다듬을 때는 귀찮았다

꽃이 시드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앉은 나비를 두 손가락으로 잡는 법을 배웠고
새가 떨어뜨린 깃털 하나는 엄마에게 보여줬다
잠자리 떼가 오면  할머니는 광에서 채를 찾아 주셨고

뒷동산 아카시아 숲은 매일 먼저 가는 곳,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물, 달팽이의 신기한 뿔,
비 오는 날은 흙을 모아 작은 연못을 만들고
눈 내리는 밤은 동네친구들을 불러냈다
바람 부는 날은 양팔을 벌리고 뛰어 다녔고
친구들과 누가 해를 오래 보나,
오줌 멀리 싸기 시합을 하며 깔깔댔고
나무에서 떨어져 난 상처에 나뭇잎을 붙이고
여치를 잡았을 때는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다
엄마한테 혼날까봐 집밖에서 떨기도 했고
밥 먹는 거는 귀찮을 때가 더 많았다

부엌에서 몰래 퍼 먹은 설탕은, 다음날 못 찾았고
동생과 같이 짜 먹어본 치약은 높이 걸려 있었다
제일 맛있는 건 기름에 튀겨 설탕 뿌린 누릉지, 
빗자루 가지 뽑아 여자애들 치마 들치고 도망갔고
큰 여자애들 고무줄넘기, 줄 끊으면 그날의 영웅이었다
유리구슬 따먹기, 모두 잃으면 동생이 복수를 해 줬고
반짝이는 쇠구슬은 밤마다 손에 쥐고 잠을 잤다

단짝이던 친구가 멀리 이사 가는 날,
아프지 않아도 밥맛이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열이 나고 아플 때 엄마가 중요한 사람이란 것도 처음 알았지만
엄마 손에 끌려가서 동네목욕탕에 갈 때는 너무 싫었다
....
“ 여보! 밥 먹어요..”

(..이런 글을 쓸 때 아내가 부르면  배고파도 귀찮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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