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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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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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좋은나라 0 1038
구멍 /손계 차영섭

      물이 구멍을 보면
      후루룩 뛰어 들어간다

      바람이 구멍을 보면
      휘파람을 불면서 지나간다

      옷에 구멍이 나면
      살이 창호지를 뚫고 방긋 웃는다

      양말에 구멍이 나면
      뱅뱅 최소한 네 번은 돌려 신는다

      바퀴에 구멍이 나면
      그냥 스르르 주저 앉아버린다

      하늘에 구멍이 구멍이 나면
      소낙비를 바가지로 퍼붓는다

      추억에도 구멍이 있다
      구멍가게 앞에만 가면 침을 질질 흘던,
      냄비를 하도 끓여 밑에 구멍 나면 때워서 쓰던,
      엿장수에게 빈 병 주고 엿가락 하나씩,
      딱 잘라 구멍이 크면 승자의 기쁨을 보던,
      
      고무가 없어 틀린 답을 지우느라
      손가락에 침으로 빡빡 문지르면
      아예 종이가 뻥 구멍을 내준다

      우물가 돌담에 ‘소리통’을 뚫어놓고
      귀 쫑긋 쫑긋,

      바늘구멍에 소는 못 들어간다 했으니까
      대신 내가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운다

      신혼 부부 창호지문에 침으로 구멍을 뚫고
      희망에 가슴이 콩닥거리던 그 시절이 좋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애 바지에 구멍을 뚫고 다닌다

       구멍은 내부와 외부의 소통의 길이고
       구멍은 생명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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