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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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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0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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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채



전동차 문이 닫히는 순간 덜컹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목과 두 팔이 문틈에 끼었다
성급히 빠져나간 두 다리만 문밖에서 버둥거린다
그러나 폐지 자루를 움켜쥔 손은 완강하다
손등에 적힌 갑골문자가 그가 헤맨 도시의 길들을 보여주고 있다

움켜쥔 자루는 꿈쩍도 않고
門이 큰칼*이 되어 깡마른 노인의 목을 겨누고 있다
 
절룩이며 거둔 따끈한 뉴스들
아무렇게나 접힌 아침이 너무 육중하다
방금 전까지 선반을 더듬던 손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쫓기듯 두리번거리던 눈빛은 단도처럼
자루에 꽂혀있다

안도 밖도 아닌 그 노인
눈만 끔벅거린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러 번 당해본 일이라는 듯
뜻밖에 덤덤하다

쇄골이 산맥처럼 뚜렷하다
찰나에 백 년이 지나간다

잠시 후 방송이 나오고 잠깐 문이 열리고
그는 늘어진 목을 천천히 제자리로 거두어들였다


*중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구.


―『소리의 거처』(황금알 시인선95,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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