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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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태

청춘 0 864
꽃 사태


류인채



왕벚나무 사태 졌다
이 열 횡대로
젖꼭지가 부풀어 오른 꽃들이
약속한 4월을 한꺼번에 게워내고 있는 거다
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줄일 때마다
늘어진 분홍 가지가 그네를 탄다
언젠가 저 아래서 봄을 찍었다
무거운 머리를 감싸안고 저기 어디쯤 서성이다가
과열된 생각을 내려놓고 온 적 있다
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각각 딴생각에 골똘한 인문학도들처럼
나무는 왠지 시큰둥하다
벚나무들은 언덕배기 고풍스러운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산만한 생각들을 매달고 있다
검은 껍질이 들뜬 채 옹이진 아랫도리가 뿌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허리춤에서 V로 갈라진 나무는
위로 갈수록 Y가 되고 W가 되고 K가 되고
그 끝에 연분홍들이 화르르 몰려 있다
바람이 저공으로 날아간다
이쪽과 저쪽의 분홍들을 가로질러 간다
주머니 깊숙이 왼손을 찔러 넣은 사내가
오른팔을 흔들며 절룩,
간다. 빗방울이 꽃잎을 비켜 떨어진다
화사함 뒤에 숨은 불안이 환히 보인다


―『소리의 거처』(황금알 시인선95,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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