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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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거처

청춘 0 859
소리의 거처


류인채




  아 ― 힘껏 소리를 내보낸다
  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지는 소리의 꼬리들이 허공을
쓸고 간다
  말끔하고 텅 빈, 허나
  공중 어딘가에 꽉 들어찬 소리의 나라

  수많은 뼈가 흙이 되고 핏기 잃은 땅이 객토할 동안 허
공은 투명한 소리의 뼈로 일가를 이루었을까
  가끔은 비행기의 머리에 찢어진 굉음들, 빌딩 옥상으
로 떨어진 소리의 비명도 있다

  허공의 집
  어린 날의 어설픈 휘파람소리 그에게 들킨 수줍던 첫말
  젊은 아버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쌓여있는 곳

  저 목련 나무의 희디흰 젖니도 모두 그곳에서 온 것일까

  아, 하는 순간 봄이 벙글고 화장을 고친 버드나무 종
아리에 물이 올라 소리에 살이 찌는 계절

  보이지 않는 소리의 나라는 핼쑥한 겨울 산의 무릎 같
은 곳
  버림받은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힘줄 퍼런 소리가 저
곳에 밀집해 있다
  저 빽빽한 허공을 비집고 봄이 와서
  꽃물이 번지고 배 밭이 환하다

  봄꽃에 매달린 소리가 한꺼번에 피고 진다


―『소리의 거처』(황금알 시인선95,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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