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락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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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 내리는 날

청춘 0 902
싸락눈 내리는 날

   

류인채




나와 마주 보고 앉은 등 뒤로 싸락눈이 내리네
전철 안 중년의 사내, 싸락눈을 배경으로 곤히 잠들었네
밥 대신 술로 배를 채웠는지 고약한 냄새 풀풀 날리네

입을 반쯤 벌리고 코를 골다 갑자기 눈을 뜨는 사내
자다 깨어 비뚤어진 챙모자를 바로 고쳐 쓰네
마른 몸에 꽉 끼는 티셔츠 빛바랜 점퍼
흘러내린 바짓단 밑으로 차디찬 맨발이 보이네
잿빛이 된 흰 운동화 밑창이 입을 딱 벌렸네
허기를 채우지 못한 저 아가리

창 밖에는 소복소복 눈밥이 쌓이는데
사내는 지난밤의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노래하네
풍∼년∼이 와∼았네 풍∼년∼이 와∼아 아∼았네…
잔뜩 가문 몸으로 풍년가를 부르며 혼자 신명이 났네
목의 힘줄을 타고
노래로 변한 슬픔이 사내의 몸을 빠져나오네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마구 노래를 퍼주는 인심
벌어진 운동화 밑창이 딱딱 박자를 맞추네
전철도 덜컹덜컹 장단을 맞추네


―『소리의 거처』(황금알 시인선95,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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