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 최한나

홈 > 시 사랑 > 나도 시인
나도 시인


아직 등단하지 않았지만 시에 관심과 조예가 있는 분들의 자기 작품을 소개합니다.
등단시인은 시인약력에 본인 프로필을 등록하신 후 회원등급 조정을 요청하시면 <시인의 시>에 작품을 올릴 수 있습니다.

가위 / 최한나

최한나 0 115
가 위
최한나

아침 점심 저녁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가윗날이 묻어있다
우리 집 가훈은 가위였다
나와 형제들은 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잘려 나왔다
여전히 나의 손엔 잘 드는 가윗날이 있어
나는 엄마와 아버지도 한 손에 쥘 수 있고
가족들의 나이도
한 손으로 다 셀 수 있다

가족이 간 빈 곳을 확인하는 일
가윗날이 오리고 간 자리마다 구멍 난 곳들을 들여다보면
멀리 있는 것들이 더 크게 보인다
마치 당신들이 있는 피안인양
어지러운 절선을 따라
잠 속에서도 쉬지 않고 춤추는 가위
언젠가는 손톱만큼 남은 한 조각까지 자르겠지만
무작위로 잘라지는 것들이란 없다
밤마다 할머니가 짧은 잠마저 설쳤던 이유도
가위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던 까닭이다

오늘 아침도 빈자리 메우듯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거울 속에서 가위가 씨익, 웃지만
세상엔 내 손에서 빼앗아간 가위를 쥔 손이 몇 개 더 있다
무뎌지기는커녕 갈수록 날이 서가는 가위
가위도 서열이 있고
시퍼렇게 날 선 나이가 있다

최한나 시집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에서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