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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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탕

[알탕] 

우리 동네 시장통 앞 건물 지하에 정말 장사 안 되는 막걸리집이 있다. 위치는 나름 좋은데 주위가 워낙 발전하다보니 젊은이들을 위한 포차나 술집이 많이 생겨서일 것이다. 내가 그런 허름하고 조용한 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게 앞에서 부업으로 옛날과자를 파시는 사장님의 인상이 너무 좋아, 집사람과도 가고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거기로 데려간다. 

그 집에는 안주가 아주 다양하고 저렴한데, 집사람과 가면 빈대떡과 알탕을 시켜 산성막걸리와 함께 먹을 때가 많다. 알탕은 그 자체로 안주가 될 뿐 아니라, 밥 한 공기 시키면 식사까지 되니 집밥 먹기 싫을 땐 딱이다. 안주도 홍어에 고갈비 등 다양하지만, 겨울철에 술안주 겸 식사하기 좋은 탕 종류로 알탕 만한 것이 없다.  

내 취향에는 대구탕이나 생태탕은 가격에 비해 술안주로는 알탕보다 못하다. 대구탕은 결코 1마리를 다 주는 법이 없고, 생태탕도 끽해야 1-2마리에 불과하나, 알탕은 오독토독 씹히는 알 하나하나가 생선 한 마리의 영양분이 들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식감도 괜찮아 밥과 함께 안주 삼아 먹기엔 최고다. 

만 원짜리 알탕에 들어있는 알의 수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추정컨대 수백만 개는 될 것이다. 물론 암컷이 산란도 못한 상태에서 잡히는 바람에 수정도 못해봤겠지만, 그 알들 하나하나엔 어미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어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알을 잉태하여 소중하게 키우다 산란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향해 목숨 걸고 항해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몇 날을 헤엄쳐 가다 해가 밝게 뜬 어느 날, 어느 운 좋은 어부의 그물에 걸려 배까지 얻어 타고, 난생 처음 사람들에 둘러싸여 건강미를 뽐내다 어물전에서 제왕절개를 하였지만, 알은 마지막까지 어미의 희망이었음이 틀림없다.  

지난 주말 알탕 덕분에, 어릴 적 친구 부부와 함께 옛 추억을 터트리며 시원하게 먹었지만, 뒤늦게 글을 쓰면서 한알 한알의 꿈과 희생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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