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리움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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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06:55
비가 오면 우리는 누구나 옛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가 오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여 약속을 잡고, 약속이 안 잡히면 동네 빈대떡집을 기웃거리다 막걸리 한 통을 사서 집으로 간다. 물론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이 들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을 좀 살아보니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은 너무나 모호한 안개 속과 같은 곳이었다. 그동안 이리저리 헤매며 여유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추억을 돌아보기는커녕, 나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날의 추억이나 사랑이 이제야 가끔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그런 추억들은 비 오는 날 더 또렷이 떠올라 마음속을 그리움으로 가득 채운다.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내리면, 어쩌면 땅을 먼저 적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먼저 적시는지 모른다. 하늘의 구름이 머리 위를 다 덮기도 전, 우리의 마음속에 안개 같은 눈물 씨앗이 뿌려져 우중충해지고, 우리들 마음속에서부터 먼저 비가 내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이 비에 젖기도 전에 감성에 젖고, 빗방울들이 일찌감치 마음속의 먼지를 거둬내니 다들 옛 추억이 가슴 위로 떠올라 그리움으로 가득 차 버리고,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라앉힐 마법의 술을 찾는다. 술잔이 돌수록 빈대떡집이 떠들썩해지는 것은, 갈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사람을 떨쳐버리기 위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