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지병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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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4 06:27
봄이 되면, 어른들도 산과 들에 나물을 캐러 가고 봄나들이한다고 떠들썩하지만, 봄은 누가 뭐라 해도 아이들의 계절이다. 3월 개학을 하면 휑하던 아파트 골목골목 봄꽃보다 더 화려한 꽃들이 야단법석을 떨며 활개를 친다.
봄꽃이 제아무리 커도 사람보다 클 수 없고, 봄꽃이 제아무리 화려해도 알록달록한 아이들 옷보다 화려할 수 없으며, 봄꽃이 제아무리 향기를 뿜어도 아이들이 재잘대는 웃음꽃보다 멀리 퍼져나가지 않는다.
활기찬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도시가 사진인 양 생기가 없다. 생기가 사라진 도시에 봄꽃이 아무리 화려하게 핀들 무슨 흥이 나겠는가!
지금쯤이면 산과 들에 봄나물이 그윽한 향을 풍기고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어서 오라 손짓할 터인데, 사람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움직일 수 없으니,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폰만 쳐다보고 있다.
집안에서 티브이를 보다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는데, 나다니는 사람은 잘 안 보이고 전깃줄 위에 까마귀 몇 마리가 울어 젖히고 있다. 건성으로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에, 사람 대신 까마귀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울음으로 화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