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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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06:16
간혹 어릴 적 사랑이 결혼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 젊은 날 사랑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철이 없기도 했지만 아직 인생이 뭔지 몰랐고, 인생을 설계할 능력도 없던 때였다.
당연하고 영원할 것 같던 그 시절의 사랑은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떠났을 때 가장 어두운 구석에 찌그려진 채 버려져 있었다. 차라리 눈이라면 차가운 겨울날 녹지 않고 길모퉁이 그늘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텐데 벚꽃은 열흘을 못 간다.
사랑은 그렇게 한 계절 눈물을 남긴 채 화려한 꽃잎처럼 바람에 날려가고, 꽃이 진 자리에는 상처가 남아 몇 해 동안 꽃이 피지 않았다. 흐르는 세월에 아물었지만 그 짧았던 사랑이 가장 화려했던 계절에 핀 꽃이므로 매년 봄, 꽃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꽃도 그 시절 꽃이 아닐 텐데 나의 눈과 감각기관이 무뎌진 것인지 봄만 되면 화려한 꽃들이 그 시절을 떠오르게 만들고선 저 홀로 사라져 간다. 올해도 역시 무심한 봄비에 꽃은 금세 떨어져 쓸려 가는데.
그리움으로 응결된 가슴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 하늘하늘 떨어지는 그대를 닮은 눈송이. 그냥 조용히 피었다 소리 소문 없이 빗물에 쓸려갈 것이지 어김없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갈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 억지로 다시 정신을 차리지만 세월이 흘러도 봄만 되면 꽃잎이 내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