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산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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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05:42
장마철에 탁구장을 나서는데 뒤집어진 장우산이 비에 젖어 버려져 있다. 조금 전에 나간 학생이 들고 간 것 같은데 돌풍에 뒤집어진 것 같다. 내가 다시 뒤집어 보니 째진 곳도 없고 멀쩡한 새 우산이다.
졸지에 나는 이걸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버리고 간 것은 분명하지만, 요즘 같은 때 혹시 절도죄 비슷한 죄명으로 구설에 휘말릴까 두려워서다. 조금 망설였지만 나는 용기 있게 들고 왔다.
예전 같으면 우산이 귀해 살 몇 개 부러지거나 조금 찢어진 것도 가져다 고쳐 썼는데, 이젠 거의 우산을 고쳐 쓰지 않으니, 간혹 동네를 울리던 “고장 난 우산”이라는 구수하면서도 낭창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돌풍에 뒤집힌 멀쩡한 우산은, 주인을 잘못 만난 것도 억울한데, 한순간 어린 주인의 실수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보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데다, 재기의 기회마저 사라졌다. 이젠 바보 온달은 신화가 되었고, 비에 젖은 사람은 저 우산처럼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