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후 정겨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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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7 08:04
간혹 사진을 보다 보면 나의 추억과 일치하지 않아도 사진 속의 전경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사실 나는 도시에서 살았기에 원두막 농사에 대한 추억은 없다. 수박밭도 어른이 되어서야 여행을 하면서 수박밭을 직접 보았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본 농촌 과수원의 풍경이 정겹다. 제법 넓은 수박밭에 밀짚으로 만들어진 허름한 원두막이 있고, 그 위에는 마치 철모를 뒤집어둔 것처럼 수박이 몇 개 쌓여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빈 막걸리 통이 몇 개 널브러져 있다.
8월이 넘어가는 땡볕인데, 밭에는 아직 따지 않은 수박들이 군데군데 숨어 늦잠을 자고 있고,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주인 할아버지는, 아마 일하다 막걸리 몇 통 마시고 어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저 막걸리 통처럼 널브러져 있을 것 같다.
농촌 생활의 어려움을 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골이 난 시골 생활은 매일 비슷할 것이고, 겉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신선놀음도 일상일 것이다. 할머니에겐 그런 할아버지가 소 몰고 간 아이처럼 매번 신경이 쓰인다.
할머니도 많은 일에 열심히 밭을 매다, 행여 잘하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수박밭에 오니, 할아버지는 안 보이고 빈 막걸리 통만 나뒹굴고 있다. 빈 막걸리 통을 수거하는 순간부터 터져 나올 그녀의 님 찾는 소리가, 벌써부터 꽹과리 소리처럼 요란하게 사진을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