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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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시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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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선

박공수 0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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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선

 
 

                                                                                                              徽兀 박공수

 

 

평생 바누질로만 삼남매를 기워 온 과부 고성댁이 메칠 전 공사 나온 아들의 에어쇼를 참관 했드랬는데, 수평 수직 원을 그려가며 하늘갓 종횡무진 번쩍이는 제트기가 고성댁 눈엔 가새로 보이다가 바눌로 보이다가, 靑 紅 白 비행운은 가닥가닥 튼실한 실로 보이고, 제트기 가늣해지며 반듯하게 박음질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실구름 긋고 솟구쳤다 급짜기 곤두박질쳐 허공을 감치며 배배꼬아 내뱉은 냉구리① 모양이 꼭 옷자락 오버로크라 “아이고 우리 아들 하늘을 깁네, 에미 바누질 훔쳐라도 보았드래?” 또 제트기 몇 대가 아슬아슬 크낙한 하트와 태극문양을 박아 홀쳐 내 놓으니 “아덜들 솜씨가 어마이 보다도 질라이네! 우리 하늘 헤진 곳도 언젠가는 각단지게 깁고 말겠구랴. 꼭 그랴”

그날 지약② 늦게 불 꺼진 상가를 지나다 천지 옷수선집만 불빛 빤해 디레다보니 철모 쓴 청년과 촌색시의 누렇게 뜬 흑백사진 밑에 바눌 같은 게 앵경 끼고 외씨보선 던져 채발 뻗고 퍽석 등져 앉아 뭔가를 깁는데…, 그렇기야 하겠냐만 내 눈엔 영락없이 고성댁이 무슨 찢겨진 펀더기③라도 있어 깁는 것 같더라. 덩달아 우리네 찢겨진 땅이 떠오르며 그녀의 이제껏 삶이 갈라진 땅의 시침질에 다름 아니었단 생각이 들고, 저렇듯 자기의 하루하루를 잘 기워 나가는 게 결국 헤진 하늘, 찢겨진 땅을 깁는 것 아닌가? 하고 문득 깨단케 되자 나의 뇌수 깊숙이 졸던 바늘이 깨어나고 발은 재봉틀의 노루발처럼 내디딘 박음질로 어두침침한 골목을 지나 쉼 없이 가자하더라

 


* ① 연기 ② 저녁 ③ 넓은 들 (강원도 고성 지방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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