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전류와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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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전류와 통하다

지창영 0 598
[고압전류와 통하다] - 최 문 자


전봇대와 전깃줄만 주로 그려오던 화가였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가 삼 년이나 올라가 스케치하던 언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친구를 매장하고 돌아오던 길, 나는 그 언덕에 한 번 올라가 보았다. 조그만 꽃집 지붕 위로 백목련 나뭇가지엔 막 떠나려던 새떼들이 푸드득거렸다. 그가 줄곧 앉아 있음직한 쓰러진 통나무에 앉아 전깃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그린 저 전깃줄만큼은 정말 자유로웠다. 빈민굴처럼 허름한 아파트 단지로부터 올라왔다가 가끔 누군가 문 열고 나가 찬물을 한 바가지씩 끼얹고 들어가는 평범의 마을로 다시 내려갔다. 축 늘어져 엉긴 전깃줄들은 인사 한마디 없이, 절차도 없이 아무 집이나 쑥쑥 들어가 정을 통하고 다시 나와 다른 데로 정을 통하러 갔다.

나는 기억한다.
마음껏 세상의 집들을 들락거리며 매복된 정을 통했을 그.
그의 가슴에서 웅웅거리던 전깃줄의 떨림들을.
그 고압의 떨림에다 맘껏 색칠하던 그의 붓자국을.


- <<문학사계>> 2004년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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