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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작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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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김재훈     날짜 : 18-08-23 07:53     조회 : 35    
    · : 슬픔의 작은 섬
    · 저자(시인) : 진은영
    · 시집명 : 시와 시학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11
    · 출판사명 : 시와 시학
슬픔의 작은 섬
 



  진은영
 
 
 







슬픔의 섬
그런 사건의 작은 돌멩이들로만 이루어진.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던 사과 반쪽의 냄새
나는 기억한다, 그날 널 향해 내린 건 세상의 첫 가을비
아무래도 우리는 천 년을 함께 살아온 것 같아.
 



흔들리는 양귀비꽃의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향기에 불룩해진 돛으로
강 가운데로 밀려가는 자줏빛 조각배처럼
어리둥절하게 인생이 갈 거야
 



너의 옷소매는 몇 년에 걸쳐 나무 식탁에서 닳아 버리는지?
화를 내며 걸을 때면 회색 리넨 바지가 내던 거친 소리들
서로가 잘라 준 날카로운 동물의 손톱이 마루의 몇 번째 틈새를 메우고 있는지?
네 노란 공단 양산은 어떤 모양으로 기울어지며
나의 어깨 뒤의 사막에 부드러운 그늘을 만들었는가?
 



시인은 연인에 대한 미묘하고 병적인 묘사로 신문에 날 것이다.
그래도 좋으리.
사소한 슬픔은 흔들리는 거울 위로 흘러내리고
문득, 유리창으로 내다보면
달콤한 솜털 덮인 그녀의 등고선을
팬지와 토끼풀의 혀로 핥으며 봄은 올 테지만.
연인들을 모르는 척
사연 없는 세계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해
산과 강물이 서로를 쳐다볼 것이다.
 



그것도 잠시, 슬픔은 여름의 저지대로 흘러가고
폭풍처럼 살인이 일어날 테지, 연인의 배신에
핏방울과 빗방울이 쏟아질 것이다.
시인은 애인의 흐르는 홍수에 몸을 담그고
분노의 조가비를 따서
사랑의 신, 그 애송이의 부드러운 목에 진주를 걸어 줄 것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입 맞추던 강가의 풀밭이
낡은 녹색 침대 매트리스마냥 얼마나 소란스러웠는지 그제야 기억날 거다
‘우리가 처음 서로의 팔에 안겼을 때 벌들은
거대한 꽃송이의 알지 못할 꿀 속에 익사했다
그날 임신 중이던 운명은 수년의 진통 끝에 사랑과 죽음을 쌍둥이로 낳았다‘는
그런 종류의 슬픔,
그런 종류의 슬픔으로만 만들어진 작은 섬은……
 



없다. 없을 거야.
마지막으로 깨지는 네 개의 거울의 강
포클레인 옆에 서서
콘크리트 죽을 다 핥아 먹기 전엔
 



만국의 연인들이여
영원히 슬퍼합시다.
슬픔의 슈라라펜란트, 그 섬에 가기 전에
드넓게 세워진 죽음의 건축학적 강둑 위에 서 계신 여러분…….
 
 
 



                              —《시와 시학》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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