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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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주의자

김재훈 0 358
권태주의자 / 김도언
 
 
나는 권태주의자야, 라고 말했을 때
애인은 남미에 가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어려워
권태주의자의 미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왼쪽에 농담주의자의 아래쪽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열등감은
창문 위쪽에 화분의 오른쪽에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가터벨트를 채우고 애인이 화물차를 타고 떠날 때
은퇴한 아버지는 성장한 딸의 관능이 불편하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때
아는 것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할 때
술집에 모인 우스운 사내들의 성욕이나
빚을 갚지 못하는 부흥교회 목사의 우울은
자만심 강한 시인에 의해 함부로 묘사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울 앞에 당도한다
거울이 절벽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쯤은
시민들도 알아야 하는데,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힘껏 울었던 흔적을 지우고
나는 권태주의자야, 라고 말했을 때,
언제나 세상은 소란으로 가득찼다
그 소란의 중심 속으로 가터벨트를 채운
애인이 스며들어간다
폭우를 피하는 습관적인 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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